아이가 생후 40일 즈음이었을 때 남편이 파리에 있는 육아 전문매장 Aubert에서 아이와 닮았다며 펭귄 인형을 사 왔다. <절대 절대로 물에 빨지 마시오>라는 주의사항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던 독특한 인형이었다. 세탁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을만큼 털은 얼마나 부들부들한지 그렇게 촉감이 좋은 인형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다 입술 모양이 아이와 너무나 닮아서 인형을 들고 한참을 깔깔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펭귄이 깔루(Kaloo)를 아이의 가슴팍에 안겨 주었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펭귄이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애착 인형이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솔직히 애착 인형이니 애착 담요니 그런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인형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난 아이의 인형에 큰 의미를 둔 적은 없다.
아이가 생후 14개월이었던 2017년 11월, 프랑스의 어느 까르푸 매장에 들러 장을 보던 중이었다. 아이는 카트에 앉아 있었고, 나는 필요한 물건을 다 고르고 남편이 있는 계산대로 접근해 가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아이가 마구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엄마!!!!!" 이처럼 다급한 아이의 소리를 처음 들어봤기에 나는 카트를 멈추고 아이를 바라봤다. 아이는 나를 보고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엄마 저기 저기!!!!" 하면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왜 그래? 저기 뭐가 있니?" 하면서 가까이 갈 때까지 아이는 매우 흥분해 있었기에 난 살짝 걱정마저 했다. 이런 난리법석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12유로를 처음 만났던 날! 2017년 11월 프랑스의 어느 까르푸 매장이었다.
아이가 가리킨 곳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곳에는 크리스마스용 인형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좀 해괴한(!) 모습이었기에 나는 흠칫~ 했지만 아이는 빨리 만지고 싶어 난리가 났다. 그래서 "알았어. 어떤 색을 갖고 싶은데?"라고 물어 여러 색 중에 아이가 원하는 빨간색을 쥐어주고는 다시 계산대로 돌아왔더랬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처음으로 보는 아이의 격렬한 반응에 나도 남편도 놀라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어쨌거나 아이는 몹시 좋아하는 표정으로 그 인형을 안고 있다가 바코드를 찍을 때 잠시 뺏었더니 잉잉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계산하는 직원은 활짝 웃으며 "애들은 다 그래요~ 홍홍홍"하며 나에게 이해하라고까지 말했던 까닭에 나는 겸사겸사 묻게 된다.
"네, 그런데 도대체 이 인형은 얼마인가요?"
그러자 그분이
"C'est douze eours (12유로)"
라고 답해주었던 것이다.
나오면서 "인형이 얼마래?"라고 묻는 남편에게 "12유로래"라고 답하였고,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주며 "12유로 잘 들고 있어" 하다 보니 인형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12유로가 되었다. 아이는 인형을 발견하고 구입한 직후부터 늘 데리고 다녔다. 생각해 보니 아이가 그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해 구입을 한 것은 그 인형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엄마나 아빠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발라주고, 손에 쥐어 주는 것만을 경험해 본 녀석이었다. 그 스스로 맘에 드는 무엇인가를 선택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우리 부부는 그 인형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18개월 즈음, 나는 빨래를 널고 있었고 아이는 옆에서 놀고 있었다. 빨래를 다 널고 아이에게 나가자 하고 문을 닫고 나왔는데 아이가 나에게 "엄마, 아기! 아기! 아기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기? 어떤 아기?"라고 되묻자, 아이는 닫고 나온 문을 가리키며 아기~라고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문을 열어 주자, 아이는 달려가 건조대 한편에 놓여 있던 12유로를 들고 나왔다. 아이가 그동안 그 인형을 아기라고 생각했다니 갑자기 인형이 귀하게 느껴졌다.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인형을 들이면서 이름도 대충 판매 가격으로 불러버렸는데, 그 녀석을 자신의 아기라고 생각했다니 이 얼마나 애틋한가! 그때부터 나도 남편도 우리 가족이 12유로를 대하는 자세가 좀 더 바람직해졌다. 그 인형의 지위를 인정하였다는 말이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났을 즈음, 어느 토요일이었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서 지구 관람차도 탔고, 고양이 기차도 탔고, 그리고 카페에도 들러 커피도 마셨고,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도 봐왔던 저녁이었다. 외출했던 짐을 정리하던 내가 남편에게 12유로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둘 다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 남편은 그 즉시 내려가 차를 전부 털어봤으나 12유로는 없다고 긴밀히 알려왔다. 그렇게 긴박하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이는 뽀로로 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상태였고, 우리는 이를 어쩐다...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가 쪼르르 와서
"엄마, 씨비우로 어딨어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펭귄이를 안겨주며 오늘은 펭귄이를 안고 자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트릴 듯 "씨비우로~~ 씨비우로~~~"를 외치며 온 집안을 찾아 돌아다녔다. 물론 당황한 것은 남편과 나였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아이를 얼르고 달래 먹이고 씻겨 어떻게든 재웠다. 낮에 아이를 매우 피곤하게 만들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잠든 아이를 눕혀 놓고 우리는 '만약 다음날 지나온 길을 전부 되짚어서도 못 찾으면 똑같은걸 하나 사자', '그런데 그 똑같은 게 어디서 무엇인 줄 알고 사지?'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상하게 생긴 이런 인형을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을지 정말이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의 동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고, 우리는 절망했다. 아이의 소중한 물건, 아이가 아끼던 인형은 이제 실종된 건가... 슬퍼하는 자식을 보는 어미 가슴이 아프기로 이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남편은 내내 속상해하는 아이와 함께 다시 한번 다녀오겠다더니 마트 내 주차장 창문턱 한 구석에 누군가 올려놓은 12유로를 발견해 들고 개선장군처럼 집안으로 입장했다. 당시 한 손에 12유로를 들고 의기양양했던 아기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는 허겁지겁 12유로의 엉덩이에 붙어 있는 상표를 확인했다. 제조사를 알면 나중에라도 만약의 경우에 추가로 구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상표에 적힌 영문명을 검색해 추적했더니 그곳은 뜻밖에도 한국 회사였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도 실종사건은 몇 번 더 있었다. 시립도서관에서, 친척집에서, 식당에서, 극장에서 등등 하지만 매 순간마다 되찾을 수 있었기에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외출할 때 가장 먼저 챙기고, 집으로 출발하기 전 가방에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건 기본중에 기본이다.
그리고 지난겨울 이맘때였다. 매일같이 들고 다니다 보니 하도 꼬질꼬질해서 오랜만에 12유로를 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도 세탁기에 몇 번 빨았던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더 하얗게 하려고 부지런을 떨어 과탄산소다에 베이킹소다를 넣고 펄펄 끓는 물을 부었다. 보글보글 기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데 유난히 12유로의 눈에서 기포가 심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뭐 별일이 있겠어? 하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담가 두었다 한참 후에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그런데 세탁기 문을 열고 인형을 꺼냈을 때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모든 걸 집어던지고 거실로 달려갔다. 즉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주)오로라월드에게 말이다.
블라블라~~ 아이의 애착 인형의 두 눈이 부식되어 버렸습니다. 똑같은 인형을 구입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고맙겠습니다 블라블라~~~라고 오로라월드 고객상담실에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회신이 왔다. 보내준 사진을 보고 확인해 보니 이 인형은 홍콩법인에서 생산되어 유럽지역에서만 판매되는 디자인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모델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현재 구입은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인형을 보내주면 눈을 교체할 수 있는지 디자인팀에 문의해 보겠다고 친절하게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성의 가득한 회신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사건의 전모와 대안을 말해 볼 수는 있겠다 싶어 미안함을 꾹 눌러 참았다.
12유로의 정체는 유후였다. 여기에 크리스마스 한정판으로 씌운 산타모자는 아이가 잡고 다니기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다.
그랬다. 그 근본도 모르는 이상한 동물이라 생각했던 인형은 실은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 [유후와 친구들] 주인공 캐릭터 유후였다. 유후 캐릭터는 갈라파고스 원숭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졌고, 지능이 매우 뛰어난 다중지능(?) 원숭이었다. 이 인형을 구입하였을 당시 육아 겨우 일 년차였던 남편과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이전에는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유후와 친구들]은 국내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던 터라 한국에 들어온 이후 주변에선 그 누구도 이 녀석의 이름을 말해 준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12유로의 정체는 내내 미스터리였던 것이다. 언젠가 친정엄마께서 "이건 뭐니? 살쾡이니 청설모니?뭔 인형이 이렇게 생겼니?" 라고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무심하게 '몰라요'였다.
다친 12유로를 쇼파 위에 잘 올려두고 아이를 기다렸다. 사고를 쳤지만 어쨌거나 대안을 찾아놓았으니 자신있게 말해 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집에 온 아이에게 12유로를 보여주며, "엄마가 깨끗하게 만들어 주려고 했다가 그만 12유로 눈이 이렇게 망가졌어. 12유로를 만든 회사에서 12유로를 택배로 보내주면 눈을 깨끗하게 바꿔줄 수 있대. 우리 보내서 눈 바뀐 12유로를 다시 만날까?"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이는 되려 침착하게 인형 눈을 가리키며 "이거 엄마가 그랬어?"라고 물었다. 나는 "응,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깨끗하게 만들려고 그랬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알았어. 그런데 씨비우로 택배로 보내지 마"라고 말했다. 내가 "며칠만 기다리면 12유로가 깨끗한 눈으로 돌아올 텐데 택배로 보내지 마?"라고 묻자 아이는 너무나도 확고하게 "싫어"라고 답했다.
아이가 싫다니 별다른 방법이 있겠나 싶었다. 하지만 내내 미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12유로를 대체해 줄 인형이 있다면 약 일주일간수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밤새 각 언어별, 국가별 아마존을 다 뒤져서 12유로와 비슷한 인형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오로라월드에서 만든 똑같은 산타모자를 쓴 녀석이었다. 결제를 하고 장장 3주를 기다려 미국에서 출발한 인형이 도착했을 때 나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아이가 이걸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 친정엄마와 함께 포장박스를 열어보면서 "어머 똑같다!!!" 외치기까지 했다. 분명 아이는 이 녀석에게 마음을 뺏겨 버리리라 생각했다. 흐뭇함에 어쩔 줄을 몰랐다.
좌로부터 펭귄이 깔루, 오리지널 12유로, 아마존표 12유로, 그리고 유후 12유로
그날 오후, 두근두근두근~~ 아이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쨔잔~ 엄마가 특별히 준비했다!" 하며 아마존표 12유로를 내밀었을 때, 아이는 "이게 뭐야!" 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의 12유로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표현이었으리라. 그래서 나는 아이가 깨끗한 아마존표 12유로를 곧 좋아해 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는 완벽하게 져버리고 아이는 오로지 그의 오리지널 12유로에게만 모든 정성을 쏟았다. 아마존표 12유로도 사랑해 주라고 해봐도 아이는 손으로 툭 쳐버렸다. 너무나 빈틈없는 일편단심이었다.
두 눈이 퀭하니 푹 파인 인형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이번에는 오로라월드 홈페이지에서 산타모자가 없는 순도 100% 유후 인형을 주문했다. 복제 느낌이 싫다면 어쩌면 이 녀석은 좋아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소개해 주었지만 이 또한 무관심으로 일관하여 결국 우리 집에는 어쩌다 보니 갈라파고스 원숭이 인형만 3개가 되었더라는 이야기다.
그중에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버린 이름은 12유로, 두 눈은 모진 탄산 물고문에 의해 부식되어 버렸지만여전히 내 아이에게 그 애착 인형의 존재감만큼은 세상의 모든 자원을 다 합쳐도 바꾸지 않을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