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아이가 아파서였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친정에서 육아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내 생에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우면서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현재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며, 또한 양육자인 나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 공간이다.
1. 여기선 마음껏 뛰고 소리쳐도 돼
경치 좋고 공기 좋은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이곳에서는 4계절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 수 있다. 4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그러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아마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와서 본다면 좋은 조건(!)의 주택구성이라 할 만큼 이곳은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2층 집과 부모님께서 지내시는 황토방(7년 전 부모님이 황토로 직접 지으신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작은 주거공간이다)은 분리되어 있다. 둘 사이는 내 걸음으로 2분도 채 안 걸리지만 사실 이것은 매우 매우 불편하다. 아이는 그를 돌봐주는 할머니와 나의 일정에 따라 황토방과 2층 집을 오가며 전부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필요에 따라 아이의 짐을 가지고 하루에도 열댓 번씩 계단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귀찮다고 생각되기 일쑤다. 게다가 넓은 마당으로 두 건물이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보니 비가 오면 우산 쓰고, 요즘같이 추울 때면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옷을 챙겨 입어야 한다. 이처럼 안도 다다오의 건축 철학에 완벽히 부합되니 그가 엄지를 치켜들며 응원할만한 주거공간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자유롭고, 마음은 편하다. 단독주택이다 보니 얼마든지 뛰고 소리칠 수 있다. 층간소음 때문에 이맘때 아이들이 살살 걷고 조용해야 하는 눈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집안에서 도둑 잡아라~ 하며 모든 공간을 뛰어다니며 흥을 돋워도 상관없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아이의 터질 것 같은 에너지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이 시기를 보내고 있지 않음을 늘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 강아지와 고양이그리고 병아리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빠방이'가인사를 하며 격하게 반겨준다. 빠방이는 아이에게 동물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입양해 기르기 시작한 발바리 강아지다. 2019년 4월, 젖을 막 뗀 강아지를 소개받아 데려온다 했을 때 아이가 직접 '빠방이'로 부르겠다고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김빠방!" 하면 어디선가 테디베어처럼 갈색 털을 가진 강아지가 달려온다. 아이가 마당에서 놀 때는 빠방이와 대화를 한다.
"빠방아, 내가 너 물 줄까? 일로와, 나랑 같이 놀래?" 등등 항상 아이를 맴돌며 그의 주변을 살펴주는 빠방이와 그런 빠방이를 자신의 동생처럼 돌봐주려 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흐뭇한 순간이다.
며칠 전엔 꽁꽁 얼은 얼음을 조각내어 발로 뻥뻥 차는 얼음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발로 차려하는 얼음을 빠방이가 재빠르게 물어가 저만치 내려놓고 기다리면 아이가 달려가며 둘은 놀이를 이어갔다. 그만큼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강아지의 조합은 마당 넓은 주택에서 지내는 장점을 더해주고 있다.
김나비는 아이와의 소통이 더 쉬웠나 보다. 둘은 금새 친구가 되었다.
'나비'는 이웃에 사는 친척 삼촌이 키우는 고양이다. 고양이가 얼마나 사교성이 좋은지 우리집까지 와서 밥을 내놓아라 큰소리도 치고, 우리 가족이 지나가면 발라당 골골도 한다. 물론, 아이와도 대화를 주고받는다. "김나비, 너 밥 먹으러 왔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야옹~" 하면 "엄마 김나비가 배고프데요. 뭐 없을까요?" 하며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두 달여 짧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김띠룽띠룽이가 있다. 작년 5월, 길을 가다 병아리 판다는 현수막을 보고 무작정 들어가 노란 병아리 한마리를 사 왔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현관 앞에 새장을 가져다 놓고 그 안에 닭 사료와 물 등을 놓아주고 잘 키워보기로 약속했던 터였다. 그런데 6월 말, 좀 더 큰 닭장으로 옮겨 주다 그만 천방지축 날뛰는김빠방에게 물려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달라 난리법석을 치는 띠룽띠룽이를 엄마와 함께 보살펴 주었던 아이는 그 소식을 듣고"정말?"이라고 반응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남자아이라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덜한가 싶었지만 그렇게 반려동물과 이별하는 법도 배웠다.
2. 텃밭 육아
날씨가 좋아지면 아이는 많은 시간을 텃밭에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무엇에 대해 가르치는 대부분의 방식은 자연과 함께다. 외조부모의 일 년 식탁을 책임지는 채소가 자라는 이 곳에서 아이는 크고 작은 행사를 함께하는 일원이 된다. 봄에 상추, 오이, 고추, 토마토 등을 함께 심고 6월엔 감자를 캐는 것이 주 활동이다. 호미질도 해 보고 맨발로 흙을 신발에 담아 나르기도 하며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초보 엄마는 이 또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육아라 자부한다.
2018년 햇감자를 캐던 날, 한참 입퇴원을 반복하던 중이었는데 이런 활동들이 아이의 면역력을 조금씩 키워주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을리라 생각한다. 아파도 신나게 노는 모습!
3. 주변 환경과소통하기
조금씩 몸을 회복하고 병치레가 덜해지면서 아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외부활동을 늘려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면 외할머니 손을 잡고 닭장으로 달려가서 약 열 마리 남짓한 꼬꼬닭들 사이에서 따끈따끈한 계란을 꺼내오는 걸 배웠다. 세 돌을 앞두고부터는 직접 계란을 꺼내오기도 하고, 그 계란으로 요리가 되는 과정도 보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계란을 손에 들고 오다가 떨어뜨려 바닥에 깨진 유정란을 안타까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나의 뇌리속에 각인된 중요한 성장 포인트였다.
미세먼지 없이 날씨가 좋은 날엔 외할아버지의 산에 짐을 나르기 위해 설치된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하며 "와~멋지다" 하는 시간은 아이가 좋아하는 소풍이되었다. 엄마와 함께 조부모의 새참을 도시락에 챙겨가 풀밭 위에서 빠방이와 함께 간식을 먹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도시에서의 삶은 조금 더 자란 후에 지겨울 정도로 해야 할 테니 유아기의 시간은 자연과 함께 했으면 했던 나의 막연했던 바람은 이렇게 현실육아로 실현되었다. 태어나 첫돌까지 너무나 지나치게 깨끗한 공간에서 (남편의 표현으로는 그 당시 우리집은 '멸균상태였었다'라고) 자라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했던 아이었다. 한참 병원살이를 할 때 아이를 데려가 진료를 보던 지인 한의사 분께서는 나에게 아이를 좀 지저분하게 키워도 된다고 충고했었던 바다.
황토방에 군불을 때야 하는 해가 지는 시간에는 할아버지를 돕겠다며 그의 두 손 가득 장작을 끙끙 힘들게 들고 오는 법도 배우고, 걷다가 넘어지면 흙에서 뒹굴다 툭툭 털고 일어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가며, 조금은 털털하고 조금은 덜 깨끗(!)하지만 흐르는 콧물도 좀 들이마실 줄 아는 건강한 모습으로 오가닉하게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