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갈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은 전부 다 다녀보았으니 이 정도면 의도치 않게 의료 쇼핑족이 된 셈이었다. 가는 곳 의사들마다 소견이 달랐고, 병원마다 입원하고 처방받은 약도 다 먹어보았으나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가을이, 겨울이 지났고, 봄이 지나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2018년 6월 어느 날, 3주 전에 예약해 둔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집에서 출발해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에 뒷좌석에 아이와 앉아 계신 친정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 나는 정확한 원인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애는 전혀 나아지지 않고 가는 병원마다 소견이 다르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자 친정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혹시 누가 아니, 너의 이런 정성이 하늘에 닿아 오늘 만나는 의사가 아이를 낫게 해 줄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고생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운전대를 다잡았다. 그래, 어쩌면 오늘은 아이를 낫게 해 주는 의사를 만날지도 모르겠다고 희망을 가져보고 싶었다. '이 아이는 이제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라는 유명하다는 어느 소아과 의사의 소견을 들었던 날, 찡찡거리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미친 듯이 울면서 예약을 했던 병원이었다. 너무 울어서 예약을 받던 상담원이 나를 진정시켰었다. 그만큼 모든 게 절박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보니 얼마나 서둘러 왔던지 예약시간이 한 시간도 더 넘게 남아 있었다. 일단 아이 밥부터 먹이자며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정식을 먹고 올라와 진료 대기했다. 2층 소아과에 대기하는 많은 아이들 저마다의 사연은 모르겠으나 처지는 모두가 비슷해 보였다. 아픈 아이와 지친 보호자...
얼마나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아이 이름을 불렀을 때, 그리고 문 앞에 대기하다 진료실 문이 열렸을 때, 매 순간 그랬듯이 나는 모든 기대를 걸었다.
"네, 아이는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라고 묻는 의사에게 나의 첫마디는 깊은 한숨과 함께였다.
"선생님 사연이 좀 길어요"
그러자 빛나는 금테 안경을 쓴 짧은 머리의 의사는
"네 어머님 천천히 다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라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에 나는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던 처음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돌발진으로 시작해 살모네시스 완치 후 장염으로 이어진 시간들, 이후 찾아온 장마비 등등 그리고 봄부터 지금까지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쉰소리가 나는 숨넘어갈듯한 기침이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고... 여러 병명으로 지금껏 입퇴원을 반복해 왔다고... 아이 상태가 잠시도 편한 적이 없다고 등등 이야기가 끝나자 의사는 물었다.
"아이가 기침을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난 무릎에 앉혀 놓은 아이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너무나 평온한 표정이었고 어서 그 기침을 해 보라고 시킬 수는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아이의 기침 흉내를 냈다.
"선생님 이렇게 컥컥컥 크으억 억억~~ 억억 컥억~ 이렇게 해요"
그러자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어머니 그게 어떤 기침이지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쇳소리 같기도 하고, 숨이 끊어질 것 같기도 하고, 천식 같기도 하고, 후두염보다 심한 소리 같다 등등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던 의사는
"그럼 이제 아이를 볼게요"
하며 아이의 가슴부터 청진기를 대 소리를 듣고 귀를 보고, 목을 살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어머님, 지금 상태로는 아이가 특별히 어디가 아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편도 크기도 심하지 않고 평균이고 (어느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는 이 아이는 편도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이렇게 아플 거라고 빠른 수술을 권했건만), 중이염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특별히 어디가 이상이 있다고는...."
그때 밖에서 기다리던 친정엄마가 조용히 문을 열고
"선생님하고 얘기할 수 있게 아이 데리고 나갈까"
라고 물으셨다. 지금껏 많은 진료를 보아오며 우리3인조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더랬다. 울고 보채는 아이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엄마가 중간에 아이를 먼저 데리고 나가는 것. 그렇게 안고 있던 아이를 엄마에게 안겨주던 찰나였다.
내 품에서 할머니 어깨로 넘어가던 아이가 떨어지지 않겠다며 "엄마 엄마~" 부르다 격앙되어 지난 몇 달 동안을 계속해 온 그의 특유의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칵컥커어어어억~ 엄마 헉헉헉허어억~ 엄마엄마 하아악컥컥~"
나는 뒤돌아서 소리쳤다.
"선생님 들으셨어요? 바로 이 기침이에요!!!"
나는 혹시 선생님이 못 들었을까봐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의사의 반응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머님 저 저 소리는!!!!! 백일해 기침 같습니다!!!"
"네? 백일해요?"
나와 친정엄마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는 너무나 놀란 상태로 아이를 안은채 문을 닫고 나가셨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한 병명 같이 들렸다. 지금껏 살아오며 신경 써 들어본 적 없는 병명이었다. 내 평생 이런 병명이 내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기침을 백일 동안 한다고 하여 백일해입니다. 법정 2급 감염병입니다. 백일해 예방접종은 하셨나요? 일단 검사를 하고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자가격리를 하셔야 합니다. 이 병실을 나서시면 어디도 들르지 마시고 바로 댁으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격리를 시작하십시오. 일주일 후에 진료를 받으러 오셔야 하며, 백일해 소견으로 질병관리본부에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백일해라고 확진을 받으면 오늘 이 대형병원에 오셔서 다닌 모든 동선을 역학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의사는 매우 심각했고 나는 더더욱 심각해졌다. 갑자기 머릿속에 봉준호 감독 영화 <괴물>에서 보았던 하얀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집에 찾아와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를 격리시키는 그 장면이 펼쳐졌다. 이것이 진짜 백일해면 우리 아이도 그렇게 어디론가 포장되어 실려가나? 내 머릿속에선 이미 한 편의 영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깐 밖에서 대기하기 위해 진료실을 나오니 이미 마스크를 쓰고 계신 친정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신다.아이의 입에도 유아용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마스크를 가져와 나에게도 하나를 준다. 우리 셋은 그렇게 입부터 봉인(!)되었다.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고 의사가 다시 진료실을 나왔다가 들어가는 긴박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후 여러 차례 검사가 이루어졌고, 아이는 자지러졌다. 그리고 의사는 이제 약을 사서 어디도 들르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는 말을 한 번 더 강조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으며 물었다.
"선생님, 아이가 백일해 진단을 받으면??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의사는
"어머님 아무 걱정 마세요. 아이는 치료받으면 됩니다. 지금은 어서 댁으로 돌아가셔서 격리를 하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병원을 나섰다. 친정엄마는 아이를 업었고, 나는 여러 가방을 들고 그 옆을 걸었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주차장이 얼마나 큰지 한참을 걸었고, 뜨거운 6월 오후 2시 햇살은 너무나 눈부셔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차 안에서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다리라 하고 나는 약을 사 오겠다며 후문 약국으로 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대기번호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내 순서가 되었건만 처방전을 달라는데 처방전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놀라 혼이 쏙 빠진다는 표현 밖에는 그 당시 나를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다. 수납도 잊고 처방전도 없이 약국으로 약을 사겠다고 온 나를 보고 약사는 대기하지 말고 바로 자신에게 처방전을 가져다 달란다.
그렇게 다시 후문에서 병원 본관까지 이글거리는 주차장의 아스팔트 길을 걸었고, 무인수납을 하고 돌아와 약을 샀다. 햇살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더운 것도 몰랐다. 다만, 이제 무엇인가 원인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의사의 말대로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수화기 너머로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오후 5시께는 시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확인 전화라고 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친정부모님은 저녁에 잡힌 약속을 모두 취소하셨다. 그날 이른 저녁밥을 먹은 후에 아이에게 처방받은 약을 두번째 먹이고 씻겨 재웠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만성 기침에 만성 중이염에 만성 편도염에 부비동염에 기관지염에 후두염에 폐렴에 등등 아프기 시작하면서 늘 악을 쓰고 울다 잠에서 깨어났다. 오전, 오후 두 번의 낮잠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문에 나의 아침은 그런 아이를 안고 얼르며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런 일상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삶에 완전히 찌들어갔다.
아침햇살이 동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집안 깊숙이 들어왔다.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가 따스한 햇살로 밝아졌다. 잠든 아이의 뺨에 보드라운 햇살이 닿았을 때 이렇게 솜털 하나하나 보송보송한 아이가 백일해라니...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꼬...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잠든 아이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아이가 가만히 움직이더니 눈을 반짝 뜬다. 그러더니 엄마를 보고 배시시 웃는다!
불과 어제만 해도 악을 쓰며 울다 깨어난 아이가 나를 보고 웃었다. 아이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시하 일어났니?"
라고 묻자 아이는 몸을 한 바퀴 굴러 자신의 발을 붙잡고 뒹굴뒹굴하다 다시 굴러서 엄마에게 온다. 트롤처럼 굴러온 아이를 내 품에 꼭 안고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아이의 이런 모습을 빨리 친정부모님께, 그 누구보다 나와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하여준 친정엄마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시하야 우리 1층에 내려가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할까?"
그러자 아이는 "응" 하며 벌떡 일어난다. 내 이렇게 평온하게 시작해 보는 아침이 얼마만이었던가!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주고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친정부모님이 '어머 시하 일어났어?' 하며 아이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걸 반갑게 바라보고 계셨다. 지금껏 이 계단을 한 번도 걷지 않고 늘 찡찡거리며 안아 달라했던 아이는 그렇게 처음으로 내 손을 잡고 계단을 전부 그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아이는 하루아침에 완전히 변했다.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이었다. 우리는 그 비결이 전날 처방받아 온 약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나면 그 마법의 약을 신줏단지 모시듯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온 정성을 다해 먹였다. 그리고 하루하루 아이의 기침은 잦아들더니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몇 개월을 고통스럽게 했던 그 기침이 단 며칠 만에 사라졌다는 걸 알았을 때 '아~ 내가 정말 명의를 만난 것이 맞는구나! 바로 이런 분을 명의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일주일 후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갔다. 백일해가 아니었다. 충분히 짐작했던 결과였다. 백일해 확진을 받았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거라 생각했다. 의사는 나에게 그것이 어떤 바이러스였는지 상세히 설명하였다. 하지만 나에게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블라블라~~ 그러니까요 선생님, 제가 마침내 명의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이지 선생님처럼 대단한 분께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내저으며
"아닙니다 어머님. 제가 명의라니요.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아이가 몇 개월 동안 혼자 아플 만큼 충분히 다 아프고 나서 그 스스로 나아지려고 하는 자가 치유 그 찰나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뭘 어떻게 해서 그런 게 절대로 아닙니다. 허허허"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토록 겸손한 의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2018년 6월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셨던 소아청소년과 이찬재 선생님이다. 본원과 분원 일반의로 순환진료를 하셨다는데 방금 병원에 문의해 보니 현재는 분당 서울대병원에 더 이상 근무하고 있지는 않는가 보다. 우리 모자가 그분에게는 스쳐간 많은 환자 중 하나였겠지만,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분이시다. 어디에서고 훌륭한 의사 선생님으로 지내주시기를 빈다.
아이는 그 이후로 7월, 8월, 9월을 신나게 뛰어놀면서 몸을 완전히 회복했다. 이후 독감으로 두 번 입원을 더 한 적이 있지만 이찬재 선생님을 만나기 전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