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 형아가 되었어요
아이 스스로 성 정체성을 찾아간 여정
아이가 문화센터 수업에서 처음 백설공주 의상을 입었을 때, 너무 웃겨서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한 시간 동안 발랄하게 수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부터 나는 아이가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구나 아이를 하나 낳으면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물론 아들이라서 서운했던 것도 전혀 없었지만, 아들을 유아기 때만이라도 귀엽고 예쁘게 키워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실현시켜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긴 머리 남자를 좋아했던 개인적인 취향도 반영되었다.
일단 짧은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두 돌 무렵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 즈음 앞머리를 묶어줬고, 약 6개월 정도 길러졌을 때는 파마를 했다. 첫 파마는 아이가 비교적 협조적이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파마를 한 단발머리 남자아이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를 여자라고 생각했고, '남자예요 여자예요?'라고 물어보거나 또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 '어머! 여자인 줄 알았어요' 하며 깜짝 놀라는 반응에 익숙해졌다.
머리가 제법 길러지니 중성적인 느낌이 자리를 잡아 매우 잘 어울렸다.
엄마는 당연히 여자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내심 즐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마다 아이는 '난 남잔데'라고 말했더랬다. 엄마는 아이보다 한참은 부족했던 것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머리를 기른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2019년 9월 아이가 세 돌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아침처럼 전날 골라놓은 아이 옷을 예쁘게 입히고 나서 평소와 다름없이 아이 머리를 빗어 묶어주려 했다. 그때 아이가 엄마에게 깊은 속내를 고백하듯 말했다.
"엄마, 이제 머리 묶지 마"
"응? 머리 묶는 게 싫어?"
"친구들이 다 나를 여자라고 생각해"
"그랬어?"
"응. 나는 남잔데 친구들이 나를 여자라고 생각해"
"머리를 묶어서 그런 거야?"
"응"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엄마였나. 아이가 여자처럼 예쁘다는 둥, 아이가 여자인 줄 알았다는 둥 소리를 듣는 것이 색다르고 남다른 것 같아 좋게만 느껴왔지, 이것에 대한 아이의 의사는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까지 마음고생을 했을 아이의 속내가 느껴져 초보 엄마는 어리석음을 탓하며 반성했다.
그럼 머리를 자르기 원하냐고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묶지만 말란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단발머리를 풀 어제 낀 채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담임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머리가 자꾸 내려오니 아이가 너무 불편해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선생들이 우리 아이 머리만 계속 신경 써 주기가 힘드니 묶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핀으로라도 집어주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핀도 싫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후 집에 돌아와 마당에서 머리가 봉두난발이 되어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긴 머리 남자를 좋아하던 나의 사춘기적 로망은 잠시 잠깐이나마 내 아들이 채워주었던 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는 파마를 하는 것도 머리를 예쁘게 관리해 주는 것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머리를 자르고 남자아이의 모습을 되찾은 아이는 한층 더 성숙해졌다.
그 즉시 아이 손을 잡고 미용실로 함께 갔다. 머리를 자르고 더 멋진 남자가 되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다 내려놓은 마음인 줄 알았는데 아이의 머리칼이 싹둑싹둑 잘려나갈 때 너무 가슴이 아파 차마 바라보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짧아진 머리칼을 한 아이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다. 서운함을 애써 달래며 아이에게 머리를 잘라서 어떠냐고 물었다.
"좋아"
짧은 대답으로 아이는 만족감을 표현하며 낯선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나 이제 형아가 되었어요"
머리를 자른 아이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머슴아 같다며 잘 잘랐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한층 더 의젓해졌고 남자아이의 목소리와 행동들이 부각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 것이다. 초보 엄마는 깊은 반성을 했다. 그리고 아이의 특별한 일 년을 두 눈에 담아 두었던 것으로 충분해졌음에 이제 모든 건 순리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