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살 때 주말이면 파리 시내 각 동네마다 열리는 브로컨트(la brocante)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손 때가 묻은 그야말로 신박한 중고물품을 발견하는 재미와 살까 말까를 고민하고 갈등하는 시간도 모두 좋았다.
'이런 것도 팔아? 이걸 누가 사?' 싶은 물건들도 누군가에게는 열광하며 찾던 물건이 되었고, '그런 게 있을까?' 싶은 물건들을 우연히 만날 때면 와우~ 외치고, 놀라워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또한 그 당시 놀라웠던 것이 중고 물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엄청난 덕후 기질이었다. 오래된 LP앨범이 적게는 몇 유로에서부터 몇 백 유로를 호가하고, 특정 음반을 찾으러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앨범을 발견하면 눈빛은 세상을 다 가진듯 반짝였다.
삼십 년도 넘은 잡지 한 권이 몇십 유로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서 컬렉션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브로컨트는 경매를 하는 사람들이 주말에 임장을 다니듯 주말마다 샅샅이 찾아내고야 마는 엄청난 집중과 의지를 가진 결국엔 실력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가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한국에 들어와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과 신발은 사이즈가 작아져 바꿔야 했고, 장난감은 월령에 맞지 않고, 싫증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했고, 동화책은 이미 다 읽은 것이라, 그 외 육아용품 등등 아이 물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수집은 아니더라도 중고 물건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듬해 봄에 우연히 시청 아동센터 주최로 동네 중고장터가 열린다는 공고를보고 신청한 적이 있었다. 당일 아침 일찍 준비하여 아이의 물건 대다수를 가지고 나가 하루 종일 인형 한 개에 100원부터 500원까지, 동화책 한 권에 200원, 아이 옷 한 벌에 천 원 등등 가져간 80%의 중고 물건을 팔아 본 적이 있었다.
그날 친정엄마와 함께 하루 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하루 매출(!) 대략 35만 원 정도를 세어 보면서 느낀 건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인형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꼬마 아이들과 흥정도 즐거웠고, 더 얹어주는 넉넉함도 흐뭇했고, '그냥 가져가세요'라며 너그러움을 베푸는 것도 꽤나 만족스러운 상거래였다.
아이의 스토케 유모차는 파리에서 250만 원을 주고 사와 몇 번 쓰지도 못하고 25만 원에 팔았더라지만 내 아이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그 물건에 대한 아쉬움도 집착도 버리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그날 크나큰 마음의 부자가 되어 개선장군들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중고물품을 팔고 또 그러는 틈틈이 다른 사람들의 테이블을 돌아다니고 필요한 것들을 사면서 배우고 느낀 것이 참 많았더라는 이야기다.그 이후로 친정엄마와 아이, 그리고 나는 중고장터가 열린다 하면 소풍을 가듯 달려갔다. 그리고 역시나 선진국 경제규모에 걸맞게 중고물품이라 할 수 없는 너무나 좋은 물건들을 발견하고 만족스럽게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그 해 겨울 코로나19가 시작되며 집합 금지 명령에 따라 자취를 감춰버린 중고장터 대신에 내 생활에 어디선가 해성처럼 등장한 "땅끈!"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국민어플 당근마켓 등장!
이게 뭐야? 싶었는데 익숙해지니 이보다 좋은 게 없었다. 나는 필요 없어진 물건을 주로 팔아야 했는데, 장터에 들고 다닐 필요도 없이 각각의 물건이 정리되는 것이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게다가 1천 원에서 만 원까지 받으며 서운할 일도 없었다.
한 동안 인테리어&리모델링 사업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당근마켓을 이용할 시간이 없었는데, 최근 사업을 일부 정리하면서 집에 있는 많은 물건들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더라니 접어두고, 박스에 담아 놓은 짐들, 자리만 차지하는 가구들을 모두 꺼내어 당근마켓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하나씩 "땅끈!" 이 울릴 때마다 몇 번 챗을 주고받고 물건을 가지고 나가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 짐은 찾으러 오고, 작은 물건은 아이 태권도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그 앞에서 건네주고, 아이를 픽업했다.
아이는 당근마켓으로 자신이 쓰던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되어 화폐로 교환되는 것을 지켜보며 함께했다. 나중에는 그 스스로
"엄마, 이것도 그냥 당근에 팔까?"
라며 심각하게 묻기도 했다.
"아직은 너한테 필요하지 않아?"
라고 물으면
"아니, 이제는 다른 동생들이 갖고 노는 게 나을 것 같아"
라고 답하며 스스로 판매 여부를 결정하기 시작했다.
2019년 중고장터에서 찾은 새것과 같은 아이물건! 조금 더 크면 쓸 장갑과 수영복, 그리고 장난감! 단 돈 1만 2천원에 모두 구입했었다.
2019년 아이가 쓰고 있는 모자도 중고장터에서 샀다. 새것과 같은 제품을 발견하자마자 일단 머리에 씌워놓고 잘 어울린다며 1000원을 계산했다.
그렇게 자란 녀석이 이제 직접 당근 마켓에 팔 물건을 정하고, 스스로 판매를 진행한다. 물건을 주기 전에 확인도 하고 돈도 직접 받는다.
때로는 무료로도 나누고, 1천 원도 받고, 1만 원도 받는다. 필요한 건 10만 원 이내로 올려도잘 팔린다.
우리에겐 필요 없는 이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되는 게 참으로 착하고 좋은 선한 영향력임을 너무나 깊이 체감하고 있다.
버리기엔 아깝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계속 두자니 자리만 차지하는 처치곤란 물건을 좋은 뜻으로 해결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이가 직접 그가 쓰던 물건을 들고 나가 확인시켜 주고 건네주며 중고물건의 선순환과 경제활동을 배워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