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기대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가족과 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가족이니까 마음을 쓴다. 뗄 수 없는 혈연이라는 굴레 속에서 허우적대는 내가 안타깝다.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 같다. 엄마는 '살면서 아이들에게 욕 한번 한적 없다'라고 한다. 마구 휘두르는 몽둥이가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울고 있는 이십 대의 나. 방창문으로 넘어 들어와 욕을 하면서 때리는 엄마는 다른 사람일까? 왜 맞았을까? 아니, 왜 때렸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야 할까? 억울한 건지 분한 건지 지금도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눈물이 난다. 엄마는 아빠에게 맞고 엄마는 우리를 때렸다. 10살쯤이었을까? 아빠의 넥타이로 우리의 목을 묶으며 같이 죽자던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날은 공포감이 나를 짓누른다.
그렇게 몸만 어른이 되었다.
어떤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결혼을 했다. 배고프지 않기 위해 먹었고 쫓겨나지 않아서 좋았다. 아이가 태어났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책을 여러 권 읽었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 아이만큼은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해서 다 엄마의 역할을 다해내는 건 아니다. 그런 내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 '양육비 안 받아도 이 사람보다 잘 키울 수 있다'라고 외치던 나는 아이를 잘 키우지 못했다. 아이가 아빠와 살았더라면 더 강한 아이로 자랐을 텐데 하는 경우의 수도 생각하며 후회를 한다.
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사이에서 멈춰있는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기에 부족한 엄마다. 노노가 스무 살이 되었다. 아이도 몸만 어른이 되었다. 하기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학생이라면 학교에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것처럼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산책을 하라고 말했다. 집안에만 있던 사람이 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올해 목표는 매일 문을 열고 나가기.
어제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장그래의 첫 출근 날 엄마가 해준 말.
어른이 되는 건 '난 어른이오'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야. 꼭 할 줄 알아야 되는 건 꼭 할 수 있어야지.
장그래 엄마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서 놀랐다. 이 세상 엄마들 마음이 다 같은 걸 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른이니까 해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노노의 속도에 맞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그대로 있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