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 해지는 헛헛한 시간
여유를 즐기는 멋진 어른
어제 개인적인 일로 영어학원을 빠져서 오늘 보충하기로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내 아침에 일어나 숙제를 했다. 숙제를 급하게 끝내니 아슬아슬했다. 54분. 여기서 미친 듯이 달려가면 승산이 있다. 단어를 보며 아침의 길거리를 달리는데 뭔가 싸한 느낌에 어제 선생님과 카톡 한 얘기를 뒤적거렸다. 왜 불운의 기운을 감지하는 감각은 이토록 정확할까. 수업은 열두 시였다. 열두 시에 수업이 있는데 나는 열한 시에 집을 나섰고 약 1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일단 엄마가 밥을 알아서 챙겨 먹으라 했으니까 밥을 먹자. 밥버거 집에 가서 메뉴를 고르고 시키는데 밥버거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추가로 떡볶이를 시켰다. 원래 집에서 먹을 때면 가족들 몫까지 다 사는지라 별 부끄러움 없이 내 밥버거 2개를 살 거지만 혼자 가서 2개를 먹는다니 직원 앞에서 말하기가 뻘쭘해 요깃거리인 떡볶이를 시켰다. 밥버거가 나오고 떡볶이가 나왔는데 분명 벽에 붙어있는 밥버거에서 판매하는 떡볶이 사진은 먹음직스웠지만 막상 나오니 그렇게 맛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전문점도 아니고 아예 맛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 먹었다. 그저 그런 맛의 떡볶이와 햄 치즈 밥버거를 먹은 후에 오롯이 30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학원을 일찍 가서 단어를 미리 해두는 것이 모범적인 행동이 아닌가 싶었지만, 선생님께서는 대개 내가 첫 타임 수업이기 때문에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오신다. 하는 수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며 친구랑 전화를 할까 싶었는데 다들 자고 있었다. 또 배가 아파서 앉아있고 싶은 마음에 카페를 갈까 했지만, 이미 10분이 흘러버린 상태였고 20분간 카페에서 음료를 먹고 나오는 건 빠듯하지 않나 싶어서 근처 작은 공원을 갔다. 거기서는 주로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운동기구가 있었고 배도 괜찮아졌다 싶어서 가벼운 운동을 하며 찔끔찔끔 글을 썼다. 그렇게 10분을 보내자 어느덧 학원을 가야 했다.
이런 예기치 않은 여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나는 항상 조바심이 났다. 밥을 먹을 때도 시간을 체크하며 얼마나 남았는지, 나왔을 때도 내게 주어진 ‘30분의 공백’을 얼마나 다채롭고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싶어서 계산하며 여유시간을 오롯이 ‘여유’롭게 보내지 못하고, 단지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간에 좇기며 불안하게 보냈다. 갑작스러운 두통과 구역질에 학원을 빠지고 쉴 때에도 이상하게 난 쉬고 있는데 쉬고 있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이런 예상하지 않았던 휴식에 대해 알차고 재밌게 보내야 할 것 같았다. 평소였다면 고통스럽게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갑작스레 ‘놀’ 시간이 생기니까 생각보다 막막해서 의미 없는 유튜브만 보고 그 와중에 ‘뭔가 해야 하는데’라는 찝찝함이 휴식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 불안감에 쫓겨 모처럼의 휴식도 휴식답지 않고 불편하게 허비하기 일쑤였다.
갑작스러운 ‘헛헛한 시간’을 늘 무언가로 채우려 했던 욕심은 되려 그 시간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으며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늘 겅중거리는 무언가를 만들었다. 휴식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쉼’도 포함된 중요한 시간이다. 어쩌면 ‘일하는 시간’, 고등학생인 나로서는 ‘공부하는 시간’ 같은 일반적인 근무의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것에 대해서 철저히 계획적이지 말자.
‘무얼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은 때론 불안과 조바심을 낳는다.
그런 건 내려놓고 갑작스러운 여유시간에도
유연하게 쉴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