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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달 May 05. 2023

싱잉 랩은 힙합이 아니다?

변해가는 '과도기' 시기의 힙합





 힙합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최근에 가장 생각이 많이 드는 힙합 이슈는 '디스 미디어적인 태도'와 '싱잉 랩의 범주'이다. 그중, 싱잉 랩이라는 뜨거운 감자는 사실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대두되어 온 주제인데 (중학교 1학년 즈음 썼던 싱잉 랩에 대한 생각이 담인 글이 있을 정도니 적어도 몇 년은 된 것이다.) 이 주제는 생각이 유난히도 많이 바뀌었다. 부정적이었다가, 생각해 보니 괜찮기도 하면서 납득이 안 가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싱잉 랩이 힙합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잠정적인 결론은 이러하다. 이제는 싱잉이니 랩이니 그런 건 별로 소용 없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생각 물론 언제나 바뀔지도 모르는 유기체 같은 것이나 지금 내가 생각하기 론 그러하다. 그러면,



 아니, 랩이면 랩이고 싱잉이면 싱잉이지 대체 뭐가 소용이 없다는 거야?



 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음악계 전체를 봐보자. 지금 힙합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의 장르만 봐도, 굉장히 융합적이고 복잡한 양상의 특색을 띠는 음악이 무한히 생산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아이돌 음악에 섞인 클래식 샘플링, 락에 섞인 발라드적인 사운드, 심지어 국악과 힙합의 콜라보도 만연한 음악계다. 장르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각종 장르가 다양하게 섞이고 혼합되어, 더 이상 '이렇다'라고 깔끔하게 정의할 수도 규명할 수도 없는 모호하고 융합적인 음악이 계속 생산되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힙합 음악에 관한 장르를 정확히 규명하려고 시도해 봤자 음악계는 다양한 장르의 혼합과 새로운 장르의 신선함을 추구할 것이다. 힙합이 뭐니 고집부려봤자 새로운 음악을 생성하는 장애물 정도밖에 안 되는 꼴이다.


 힙합스러움을 대표하는 세부적 장르를 떠올리면 붐뱁 혹은 드릴, 트랩일 것이다. 고개를 저절로 흔들게 되는 리듬의 자유롭게 넘나드는 박자를 사용하는 힙합 특유의 붐뱁과, 흔히 말하는 '빡센 랩'에 스네어가 주가 되는 드릴, 일렉트로닉 하고 다소 경쾌한 트랩은 힙합 하면 떠올리는 주 장르의 것이다.


 다만 요즈음 주가 되는 힙합 장르는 그것들이 아니다. 트랩은 워낙 품을 수 있는 범주가 다양해서 어느 장르에서든 자주 쓰이곤 한다고 쳐도 발라드나 싱잉의 인지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로파이 사운드나 발라드스러운 소스 위에 멜로디컬 한 싱잉 랩을 하는 음악들이 자주 음원차트 상단에 오르고 힙합의 주 장르로 올라오자, 기존 힙합 팬들이 삐딱한 태도로

아니, 랩 하라고! 왜 노래를 해!


라며 멜로디컬 한 랩을 하는 아티스트를 공격하는 모양새가 만연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장르의 경계는 옅어져 가는 상황이다. 기존 힙합 장르만 고집하며 싱잉을 꺾어내리는 것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빡센 랩'만 하는 음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서로의 장르가 엮이고 혼합된 장르가 만들어지고, 그 새로움에 열광하며 색다른 청각적 쾌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음악계에, 정통 힙합만을 고집하며 다른 장르를 무시해 버리는 건 힙합이 도태되길 바라는 것과 같다.


 물론 싱잉 랩이 랩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별다른 할 말이 없다. 가끔 정말로 랩과는 거리가 먼 경우도 있다. 또, 힙합 고유의 붐뱁, 드릴, 트랩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만이 힙합이라고 고집부리며 다른 장르를 억제하는 건 이제는 의미 없는 짓이다.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 추구되는 시대에 어떤 게 랩이고 어떤 게 노래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단지 사람들에게 새로운 청각적 쾌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울림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게 힙합이 아니든 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각자의 장르를 존중하면서 섞어보는 시도는 음악계를 풍부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이것만이 정답이라며 장르를 구분 짓는 일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의 한계를 만드는 것 말고는 별 의미 없다. 이제는 이 음악이 노래인지, 랩인지 토론하는 것보다는 그 음악 자체를 들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한 리스너의 자세 아닐까?





물론 이 생각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생각이 변하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고, 음악계 자체도 무척 유동적이라 음악적 동향을 예상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음악계를 보아하니 내 생각은 이렇다.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니,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지나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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