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오글거림에 대하여
그래, 그건 다 반짝이던 것뿐
가끔 내 글을 보다 보면 오글거려 참기 힘들 정도로 낯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특히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 썼던 글을 보면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린 마음에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쓴 의미 없는 어려운 단어들과 실속 없는 문장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맞지 않거나 문법적으로 오류 난 비문들 투성이인 글들은 사춘기 소녀의 낯간지러운 마음을 여실히 나타낸다. 글들의 주제도 가관이다. 고작 초등학생 주제에 삶과 영원을 논하지 않나, 연애는커녕 일말의 짝사랑도 못 해본 주제에 연인과의 이별을 다루지 않나. 보면 볼수록 어린아이의 허영심이 느껴져 약간은 귀엽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걸 보는 순간 정말 속된 말로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머리가 크고 난 후에는 적어도 전보다 더 성숙한 글을 쓸 수 있었다. 어려운 단어를 맥락에 알맞게 썼고, 문장도 깔끔해졌고, 비문을 거의 쓰지 않았다(단기 글쓰기 과외를 받을 때 비문이 많이 없다는 칭찬을 많이 들을 정도로!). 주제도 내 나이의 맞는 글들을 썼다. 최대한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쓰지 않거나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쩐지, 여전히 내 글은 오글거림 그 자체였다. 새벽바람에 쓴 글들은 아침에 되면 급하게 파기해 버리기 일쑤였고, 각 잡고 제대로 쓴 글도 다시 곱씹어 보니 무척이나 오글거려 몇 번이고 문장을 고치거나 할 수 없이 지워버렸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삶에 대해서 논할 수밖에 없었으나, 짧은 경험에 내가 쓸 수 있는 것들은 제한적이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 예를 들면 연인과의 이별이라던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내가 쉽게 형용할 수가 없었다. 글을 쓰는 게 어려워졌다. 뭐를 해도 사춘기 소녀가 새벽에 쓴 오글거리는 감성적인 글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비단 나의 글만이 중2병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명한 작가의 훌륭한 글 중 짤막한 대목을 싸이월드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고 생각하니 내심 그 글이 오글거리게 느껴졌고, 유명한 래퍼의 명가사들도 어떻게 보면 오글거리고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문학적이라면 문학적이고, 중2병 같다면 중2병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문학'과 '중2병'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글의 퀄리티 정도는 비교가 가능하나, 둘을 완전히 구분 짓지 못한다. 내가 어린 마음이 써 갈겼던 미숙한 글들은 글의 퀄리티 면에서 많이 낮았지만, 그 감성이나 글이 가지는 의의 면에서는 절대 그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의 어린 허영심도 여전히 문학적이고, 그 허영심 속에서 나름 생각했던 삶에 대한 가치관은 버젓이 예술이다. 가끔 문학작품을 보고 '오글거린다'라는 평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 '오글거린다'라는 것 자체로 이미 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예술이 오그라들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오글거림'의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일뿐더러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오글거림'의 수치를 매길 수도 없고, 그 정도를 채점할 수도 없다. 내 생각에는 문학에 오글거림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글의 구조적인 면에서의 허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 설득적일 것이다.
내가 문학이나 예술을 함부로 규명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으나, 그 문학이나 예술이 '중2병', '오글거림' 정도로 치부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린이가 서툰 솜씨로 적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담긴 글들이, 사춘기 소녀가 적은 새벽 감성의 글들이, 갓 대학을 졸업한 이의 막막한 심정의 글들이, 아이를 키우고 삶의 끝자락을 영위하는 노인의 글들이, 그들의 삶 자체가 문학이고 예술이다. 감히 오글거림을 채점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