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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달 Jul 27. 2023

[편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사랑을 배부르게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항상 친구들에게 '사랑하며 살라, 사랑하는 거 하면서 살라'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미워할 것들 투성입니다. 조금 눈만 돌려도,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폭력과 가난에 노출되어 쉽게 상처 나요. 어쩔 때는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내재된 공격성이 역류하여 분출돼 아수라장을 만드는 일도 여럿 보았고요.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은 이 세상이 '유의미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비극적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미워합니다. 흠잡을 구석이 보이면 끝까지 물고 뜯어져 매장시키려고 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삶의 파편을 부정하고 단언해 버립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원만한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저의 좁은 인간관계의 균열도 왔습니다. 다른 친구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무디고 순한 저 같은 사람도 화가 나게 만드는 친구가 있긴 했죠.


역설적이게, 그럴수록 '사랑'에 대한 집착은 커졌어요. 조금만 실수하면 인간쓰레기가 되는 매정한 세상에서 저의 유일한 임무는 '미움 당하지 말 것, 나를 사랑하게 만들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루 종일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했지요. 그래도 절 싫어하는 사람은 유유히 저를 떠나가거나 몇 마디 말을 남긴 채 저의 공간을 맴돌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몽땅 사랑해 버리면 될 줄 알았던, 저의 모난 결핍으로 생긴 유치한 착각은 또다시 애정결핍의 수렁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때 즈음일 겁니다. 연애가 하고 싶다느니, 소개를 시켜달라느니 웃기는 일까지 자처하며 사랑에 고파하던 날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이상형을 나열하며 이런 사람 없냐고 찾아다니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대책 없이 좋아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제가 느낀 건 누군가를 사랑한 게 아니라, 누구라도 사랑함으로써 풍족해지는 제 마음이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무언가 사랑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때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저에게 가벼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만이 제게 존재했기에, 점점 저는 단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가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에도 짓궂은 장난 대신 담담한 축하를 건네주고, 소개니 뭐니 같은 우스운 짓도 멈추었습니다. 더 이상 욕심부려봤자 아무런 득도 없었으니까요. 방 안 혼자 골몰하는 일도 점차 줄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제 우울감이 나아질 리는 없었지만, 불같게 화내고 나라라도 망한 사람처럼 엉엉 울진 않았어요.



생각해 보면, 인스타그램 릴스에 뜨는 온갖 커플 영상 댓글에서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지만, 사실 댓글에서 지구 멸망을 원하는 모두가 사랑받고 싶다는 공통된 욕구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니까요. 언젠가 기준만 조금 낮춘다면 우리도 흔히 말하는 '연애'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는 다정한 사랑은 사치인 것 같아서 길가의 쓰레기보다 초라했던 날들, 사랑은커녕 얄팍한 동정심이라도 얻고 싶었던 비참한 날들, 사랑인 줄 알았지만 사실 잔인한 조롱이여서 배신감에 종일 울었던 날들, 어설픈 사랑으로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어 미안함에 구구절절 장문의 문자를 보냈던 날들, 인터넷에 흩어져있는 사랑에 휘둘리지 않는 법들을 찾아봐도 나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아 대책 없이 무너졌던 날들.


그러한 수많은 날들을 가로질러 우리는 지금에 있고, 군데군데 상처가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리는 것에 능숙해집니다. 무턱대고 좋아하기보단 거리를 두고 지켜봅니다. 저 사람이 내게 주는 호의가 사랑일까. 사랑으로 둔갑한 조롱이진 않을까. 그래서 종종 사랑으로 둔갑한 조롱을 손쉽게 눈치채곤 합니다. 그리고 휴, 상처받지 않았어,라고 안심하기도 해요.


그래도 언젠가. 정말 언젠가, 나의 미숙하고 치명적인 상처까지 보여줄 수 있는, 보여준 후에도 나를 안아줄, 그런 멋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사랑을 배부르게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있다면, 부디 그 사랑이 건강하게 무병장수했으면 좋겠습니다.


 -야심한 밤에 다음 날 후회할지도 모르는 글 쓰는 고등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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