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안전한 ‘쉘터’ 따위는 없다

안소영 작 연출, 연극 <쉘터>

<경숙이 경숙 아버지>에서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경숙이를 연기하던 배우 안소영은 잊어라.


극단 골목길에서 제작 발표한 신작 <쉘터>는 안소영 연출의 두 번째 작품이다. 박근형 연출을 좋아해 그의 극단 골목길에게 무한 호의를 갖고 있기에 응원의 마음으로 관람했다. 느긋하게 작품 시작을 기다리다 극이 시작되고, 진행되며 내 마음은 바뀌었다. 응원의 마음마저 없어 이 극을 못 보았다면 기대할만한 젊은 극작가 겸 연출 한 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당근을 통해 모인 청소년들이 자살을 모의한다. 그들은 귀엽게도 참가비를 모아 그 달의 방세를 갚는다. 이 자리에 모인 아이들에게 부모는 없거나 있어도 없다. 아니 어른이란 존재 자체가 없다. 이야기는 세다. 거친 욕이 난무하고 구태여 돌려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흔한 헛된 희망도 없다.


나는 어른들의 보호 밖의 청소년들의 현실과 마음을 들여다본 적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고 내 주변에서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본 적 없다고 없는 것이 아닌데 무시하며 산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른 주요 배역의 배우들은 대체로 신인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연기가 아주 뛰어났다. 움직임도 발성도 발음도 심지어 배우 간의 합도 말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역을 맡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하게 꿰뚫고 연기했다. 탄탄한 희곡과 영리한 연출의 힘이었을 것이다.


극을 보고 나오며 남편과 ‘좋은 극단이 새로운 창작자를 키워내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박근형 연출의 극단 골목길은 그것을 해내고 있다는 믿음이 들었다. 극단 58번 국도의 대표 고수희 배우(희곡 번역가 나옥희)가, <쉘터>의 안소영 연출이 그 좋은 예로 보인다.


3월 31일까지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상연한다. 돌봄에 관심이 있거나 청소년을 알고 싶다면 보기를 추천한다. 아니 새로운 창작자를 한 명 더 만나고 싶다면 보시라. 작은 극장을 꽉꽉 채워 이 젊음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뷰라는 다리를 건너는 연극 <M 버터플라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