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신작 연극 <구름을 타고 가는 소녀들>
박근형 연출의 작품을 보는 관객은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뉜다. 나는 호이다. 연극이 할 수 있는 상상을 하게 해 주고 텍스트의 경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박근형 연출의 신작으로 가난한 여인들이 어떻게 삶을 헤쳐나가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공간도 시간도 알 수 없는 어떤 곳 강가. 번개는 부모와 동생까지 배고픔을 피해 강을 건너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비와 우박으로 가까스로 혼자만 살아남는다. 그가 눈을 뜬 곳은 매혈로 살아가는 어떤 곳. 다행인지 그곳의 사장은 그의 사촌 언니다. 이곳엔 이미 번개와 비슷한 처지의 예쁜이, 맹추, 후뚜루마뚜루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달아나고 싶지만 그래봐야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살아 나간다.
박근형 연출의 작품에 대해선 맥락이 없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등의 혹평이 있다. 이 혹평은 어쩌면 모든 것이 정확하게 설명되어 뚜렷하게 알 수 있어야만 아는 것이라 믿는 우리의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런가? 알지 못하는 채로 살고 그런 상태로 우린 죽는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가난을 피할 수 없이 안고 사는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많지 않다. 꿈에서 구름이나 타야 아주 잠깐 원하는 걸음을 걸을 수 있다.
리챠드 3세에서 보았던 장영남 배우가 번개역을 맡았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박근형 연출께서 장영남 배우를 매우 아끼고 그가 잘 되어 좋다는 얘길 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장영남 배우는 작은 무대에서도 매우 빛이 났다. 권지숙 배우는 처음 보았는데 골목길 창단 배우라고 했다. 눈에서 힘을 빼고 졸린듯한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데 독특하고 좋았다. 박소연 배우는 이번에 매우 거칠었다. 눈을 마주치면 한 대 맞을 거 같았다. 안소영 배우는 극단 골목길의 새로운 연출로 성장 중인데 이번 공연에선 그 순한 얼굴로 거침없이 욕을 쏟아냈다. 이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정단비 배우는 쉘터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 성장이 기대된다.
아프고 소외받은 자들을 이야기하는 박근형 연출께서 계속 건강하게 작품 활동을 하셨으면 한다. 이미 극단 58번 국도( @58route.official )의 나옥희(고수희 배우) 연출, 극단 골목길의 안소영 연출 등을 배출하셨고 색깔이 뚜렷한 배우들이 극단 골목길을 통해 무대에 오르고 있으니 이 명맥이 꾸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0월엔 안소영 연출의 신작이, 12월엔 박근형 연출의 계절 시리즈가 쿼드에서 공연된다니 잊지 말고 예매해야겠다.
극단 골목길 제작 @golmokkil_official
박근형 작 연출
장영남 권지숙 박소연 @soyeon_lemon 안소영 @ahnsoyoung1202 정단비 이호열 홍명환 장요훈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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