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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쌔비Savvy Sep 12. 2024

슬픔을 충분히 느껴야 애도도 가능하다

극단 58번 국도의 낭독극 <상대적 속세>


낭독극은 보통 모든 배우가 무대에 오른 채 진행되며 웬만해선 퇴장도 없다. 그런데 이 연극은 텅 빈 무대로 시작, 출연 배우가 자신의 장면에 차례로 등장하고 퇴장도 하며 심지어 의상까지 교체한다. 무대 장치와 그에 따른 연기가 없이 대본을 보면서 진행하는 약간 생략된 연극이라고 할 만큼 준비가 잘 된 공연이었다.


극단 58번 국도는 배우 고수희 씨가 ‘나옥희’라는 예명으로 연출과 번역을 하며 이끄는 극단이다. 극단의 전작 두 편을 보며 이 극단의 희곡 선정을 믿게 되었다. <상대적 속세>도 역시 작은 이야기로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토오모와 세끼는 동창회를 한다며 한 공동묘지에 모였다. 동창회 온 다른 친구는 토오모의 동생 타츠오와 친구 토오야마다. 그런데 타츠오와 토오야마가 왠지 이상하다. 이들은 20년 전에 화재로 죽었다. 그런데 동창회를 하자고 토오모와 세키를 부른 것이다. 이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가?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확실히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쉽게 얘기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 타츠오와 토오야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연극은 어느 날 갑자기 친구와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슬픔과 애도를 다룬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면 남겨진 사람은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당연히 충분히 애도도 못한 채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죽은 사람을 향해 용서를 구할 수도 사랑을 고백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히 슬퍼해야 죽은 이를 편하게 떠나보낼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하고.


죽음과 애도를 이야기하지만 고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무대는 활기와 웃음이 넘친다. 배우들도 낭독극 이상의 성의를 보여준다. 다음에 정식으로 공연되어도 볼 의향 백프로다. 이렇게 극단 58번 국도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제작 극단 58번 국도 @58route.official

츠치다 히데오 작 나옥희 연출

출연 이현직 홍수민 김재웅 이종원 송수현


참고로 이 낭독극은 무료로 9월 12일에도 공연되고, 이어서 <해녀연심 이야기>도 낭독극으로 무료로 진행되며 예매가 오픈되었다.

극단의 <오징어와 지우개>도 추석 연휴 중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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