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시뮬라시옹>
놀이공원 익스트림 기구 엔지니어인 선욱은 2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 그의 아내 상아는 이탈리아로 혼자 여행을 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 죽었다. 그 비행기는 자율 주행 비행기였고 때는 2034년이다. 아내를 잃고 우울함에 빠진 선욱에게 회사 동료는 데이터를 통해 죽은 사람을 복원해 보여주는 시뮬라시옹을 추천한다. 그리고 선욱은 시뮬라시옹을 통해 죽은 아내 상아를 만난다. 생전의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복원되어 시뮬라시옹 비전 글라스를 통해 만나는 상아는 살아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다 그 안에서 상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은 듯한 동훈의 존재를 발견하고 이어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아내의 마음을 만나게 된다.
최양현 작가는 AI 기술로 죽은 사람을 복원해 가족에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희곡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근미래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며 곧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과 함께. 그러나 나는 이렇게까지 해서 죽은 사람을 소환해 만나는 것이 좋은 일인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연극에서도 기술은 굳이 몰라도 좋은 일까지 선욱에게 일러주고 선욱은 매우 복잡한 심경이 된다. 그리고 이 연극은 곧 벌어질 바로 이런 일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한다.
선욱 역의 송철호 배우는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이 불안한 집>, <연안지대>를 통해 익숙한데 이번에는 그의 아주 섬세한 감정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랑스러운 상아 역을 사랑스럽게 한 신사랑 배우도, 성대를 갈아 끼운 듯 완벽하게 1인 2역을 한 유연 배우도, 분장을 없는 안창현 배우도 모두 좋았다. 여행자극장에서 상연한다고 하면 무대나 조명 등의 디테일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데 <시뮬라시옹>은 이런 나의 선입견을 없애 주었다. 적절한 무대, 감정 변화에 따라 바뀐 의상과 조명, 여기에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 연극이었다.
책이나 연극이 아니라면 나는 분명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고 살 것이다. 연극을 보면서 하지 않을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참 좋다. 혹자는 내게 프로관극러냐 관계자냐며 적당히 볼 것을 조심스럽게 얘기하는데 아직은 볼 만하다. 그나저나 여행자극장 의자엔 방석이라도 좀 깔아주면 좋겠다.
최양현 작 이태린 연출
송철호 신사랑 유연 안창현 임지영 송예준 출연
콤마앤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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