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004년 자신이 제대로 만든 첫 곡 <슬픈 노래>를 들고 당시 이대후문에 있던 ‘빵’에서 오디션을 겸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잼의 형태로 그러다 이민기 씨가 기타리스트로 합류하며 밴드의 면모를 갖추고 베이스와 드럼 퍼커션까지 많을 땐 5인이 활동했다고 한다. 퍼커션을 맡았던 이향하 씨는 지금은 우리 소리 극단을 한다.
마무리 공연을 함께 한 이 구성은 내 기억에 김온유 드러머가 합류하면서부터니 7년 된 것 같다. 온유씨는 밴드 활동하며 결혼도 했고 밴드의 곡 ’ 축가‘는 온유씨 결혼식 축가로 만들어졌다.
나는 ’데뷰‘ 앨범 발매 즈음부터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공연을 다녔다. 락페를 따라다니는 정도의 열정은 없어 연말 공연이나 단독 공연을 다니고 앨범을 사서 듣는 정도였다. 그 시간도 어느새 10년이 지난 것이다. 이 밴드와의 시간은 나의 결혼 생활과도 닿아있다. 남편과 결혼 후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공연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남편이 첫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내고 우리가 좋아하는 밴드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그랬더니 그즈음 공연에선 책 제목을 이야기하며 읽었다고 읽어라고 이야기해 줘서 우리 부부는 무척 감동했다.
전통과 창작 판소리를 넘나들며 록페스티벌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가 어디 흔할까? 이런 창작자와 호흡을 맞추며 장르와 악기(이민기씨 트럼펫 실력 많이 늘었다) 넘나드는 연주를 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저벅저벅 걷는 아티스트들은 얼마나 귀한가. 최근에 연극 <은의 혀>를 보러 갔다 무대에 연주자로 앉아 있던 김정민씨를 보고 내적 친밀감에 혼자 환호했다.
이런 밴드가 마무리 공연을 했다. 보통 불현듯 이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시간을 갖고 이별을 준비할 수 있어 좋다곤 했지만 난 첫 곡 ‘슬픈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나와 혼났다.
이자람씨는 자신이 락을 하기로 한 것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실제 이 밴드의 노래 가사를 자세히 살피며 듣다보면 때론 못된 연인에게, 꼰대에게, 사회에, 이상한 시스템에 조곤조곤 할 말을 한다. 그리고 어제 공연 말미에선 ‘전장연(전국장애인연합)의 지하철 시위를 지지하고 동물을 사랑하자 ‘고 말했다. 이런 메시지를 들은 팬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내 공연 입덕의 시작은 아마도 이자람 밴드다. 행복했다. 고마웠다. 무엇보다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당신들의 팬이어서.
아마도 아자람 밴드 2004~2024 @amadoleejaramband
보컬 건반 기타 장군 이자람 @jjjjjjjjjjaamm
기타 트럼펫 패셔니스타 이민기 @2_minki
베이스 큰키 김정민 @jungmink72
드럼 막내 김온유 @kim_o_new
매니지먼트 유어섬머 @yoursumm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