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폼므라 작, 연출
저녁 으슥한 거리, 한 소녀가 서 있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은 그 소녀는 조롱한다. 소년들이 알기에 소녀는 로봇인데 당최 구분하기가 어렵다. 소년 둘은 서로 소녀의 가슴을 만져보라고 미룬다. 가슴을 만져보면 로봇인지 인간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구별법이다.
조엘 폼므라가 자신의 극단 ‘루이 브루이야르’와 내한해 공연한 연극 <이야기와 전설>의 시작 장면이다. 이 연극은 로봇이 가사 노동은 물론 아이들 학습과 놀이를 돕는데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근미래의 이야기이다. 연극에 등장하는 로롯 로비와 스티브는 외모상으로도 감정적 교류로도 어설픈 사람보다 낫다.
연극 속에서 로봇은 청소년기 아이들의 이야기와 같이 보인다. 어쩌면 지금부터 펼쳐질 미래와 로봇의 발전은 애매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소년의 성장과 비슷할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로써 같이 발전하고 성장하면 로봇과 인간은 아주 자연스럽게 공존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암에 걸려 곧 죽을 엄마를 대신하여 가사와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줄 로봇이 매매될 것이다. 위험한 이성보다는 로봇과의 정서 교감이 안전하다고 믿는 세상은 이미 시작되었고, 인공 지능으로 만들어진 엔터에이너도 활동 중이다.
조엘 폼므라의 다른 작품 <두 코리아의 통일>을 본 적 있다. 방대한 이야기가 엄청난 양의 대사로 진행된다. 이 연극 역시 대사량이 적지 않았다. 이 대사를 다 알아들었다면 좋았겠지만 프랑스어로 공연되어 자막과 배우들의 연기를 동시에 보아야 하여서 두어 번 더 보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힘 있고 섬세했으며 대사를 쏟아내는 타이밍도 좋았다. 무엇보다 외모상으로는 인간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로봇의 연기(배우가 함)는 소리와 미세한 움직임으로 연출되었는데 이것이 더 강렬하게 로봇임을 인지 시켰다.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1,300석 객석 중 500석만 채워 극장은 전 회차 매진이 되어도 마이너스가 나는 공연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런 공연을 무대에 올려주니 관객은 고마울 따름이다. 피터 브룩이 ‘이 시대 가장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연출가’라고 칭찬한 조엘 폼므라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2025년의 엘지아트센터 작품 큐레이션도 기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