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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쌔비Savvy Nov 10. 2024

사람만이 희망인, 희망이어야 할 슬픈 세상, 연극 <시


1970년 10월 17일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참사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참사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연극 <시차>에 나오는 사회적 참사다.


1부. 94년 10월 윤재와 희영은 같은 병원,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윤재는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에 피떡이 되었다. 그런 그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업고 달려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맹장 파열로 입원한 희영은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폭행당했다. 희영은 돌이 안 된 아이 세민만은 안전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


같은 시간 현오는 한 달째 연락이 없는 동성 애인 윤재 소식을 물으러 자신을 길러 준 고모를 찾는다. 현오는 1970년 원주 참사로 부모를 잃고 이후로 의사인 고모에게서 컸다. 현오는 윤재가 다리 붕괴로 사고를 당했을까 봐 무섭다.


같은 날 현오는 윤재의 집으로 세민을 데리고 온다. 자신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쓰러졌을 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 자신을 들쳐업고 달려서 살려주었듯 그런 사람 한 사람쯤 더 있어도 좋은 일 아니냐며 세민에게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겠다며…


2부. 2014년 4월 세민이 일하는 장례식장에 무연고 시신이 들어온다. 연고가 없는 그 시신은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무슨 일인지 장례지도사 세민은 이 시신에 신경이 쓰인다. 시신의 이름은 최윤재다. 교수인 선아는 무연고자 조문에 열심이다. 그의 다른 일은 유적 발굴이다. 장례식장이 있는 같은 지역에서 발굴작업 중이다. 선아와 사이좋은 반장은 2014년 4월 15일 제주에 놀러 간다며 배를 탔다.


연극은 1970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진 큰 사고와 크고 작은 상처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한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현오는 비슷한 사고에 과민하게 반응한다. 아침까지 다정했던 선아의 직장 동료는 다음날 바다에서 사라졌다. 침몰한 배에 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친구와 자녀는 이태원 거리에서 죽어갔다.


1970년부터 2024년까지 이런 사고에 우린 속수무책 당했지만 사회의 안전망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이 트라우마에 힘든 이를 위로하고 감싸안는 이는 주변의 작은 이웃이다.


사람에게 사람만이 희망인 것은 다행인데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다소 절망스럽다. 성소수자는 어딘가에서 윤재처럼 묻지마 폭행을 당할 것이고 가정 폭력은 여전히 만연하며 정말 중요한 것은 자본 앞에 속수무책으로 파괴된다.


배해률 작가는 큰 이야기를 아주 작게 그러나 밀접하게 가져와 관객에게 내어 놓았고 윤혜숙 연출은 이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펼쳐 놓았다. 이런 작품을 배우들은 과잉 없는 연기로 담아냈다. 눈물을 강요하지 않지만 큰 슬픔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극이 끝난 후 한참을 일어설 수 없었다. 모든 합이 모두 좋았던 작품이다.


배해률 작

윤혜숙 연출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 제작

우미화 정대진 허지원 이주협 신지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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