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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Oct 16. 2024

벅수 8화 재생 인간의 습격.

8. 재생 인간의 습격.     

   “VVIP들은 본채에, 대표님은 별채에 계십니다.”

“혼자?”

“파트너는 물리셨답니다.”

“흠! 일단, 공 이사님은 본채 심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살펴보세요, 난 별채 먼저 들렀다 가겠습니다.”

함 사익은 무엇이든 의미 부여를 좋아했다. 그가 주최하는 마약 파티의 은어인 심포는 옛 그리스 귀족들의 연회인 심포지엄(Symposium)에서 따온 말이었다. 그리고 숨겨진 또 하나의 의미 -心捕-. 마약을 통해 점진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빼앗아 조종하겠다는 사악한 의도가 깔린 명칭이었다. 그의 별장은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울창한 해송 숲이 방벽 크고 작은 세동의 모던건물로 구성돼 있었다. 입구부터 잘 관리된 너른 잔디와 연못 주위로 은은한 휘도의 유럽풍 엔틱 조명이 조화로웠고, 각 건물로 통하는 현무암 판석을 따라 둥근 볼 램프는 마치 달을 떼어 잔디에 심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우 부장은 편할 대로 하세요. 공 이사를 따라 심포에 끼던지, 그냥 쉬던지.”

그는 이미 환각 파티로 질펀해졌을 본채를 한번 쳐다보고, 곧장 달덩이들이 박힌 길을 따라 별채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 부장! 저 안에서 제 영혼을 갉아먹고 취한 인간들이 어떤 부류인 줄 알아? 소위 한가락한다는 인사들이야. 왜, 영화에 그런 장면들 자주 나오지? 비슷해. 솔직히 함 실장이 왜 이리 위험하게 사는지 모르겠어. 아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애 거든. 학교 다닐 때 성적도 항상 최상위였고, 아이비리그까지 졸업한 인재인데.”

차민주가 건넨 생수를 마시려던 우 상길이 뜬금없는 말에 멈칫하자, 씁쓸한 웃음의 공 만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나 보군? 갑자기 실장을 애라고 하니까. 지금 별채에 와있는 함 재익 대표와 함 실장이 형제인 건 알겠지? 하지만 둘은 배가 달라. 실장의 엄마가 첩실이고. 난 첩의 동생이니까 함 사익 실장의 외삼촌인 거고.”

“컥!”

우 상길의 삼키려던 생수가 입 밖으로 뿜어 나오는 동시에, 놀란 동공엔 정원의 조명이 하나 더 생겨났다.

“알아! 그 황당한 눈빛.”

자조 섞인 긴 한숨의 공 만호가 처연하게 밤하늘을 올려봤다.

“삼촌과 조카 사이치곤 너무 어이없는 설정이지. 하지만 자네에게 굳이 가정사를 이해시킬 필요가 없으니 그냥 그런 줄만 알게, 핏줄이란 게 그리 쉽질 않아. 난 우 부장이 그만뒀으면 해. 내 보기엔 이 일은 자네에게 어울리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살아보니 인생은 흔적을 절대 지우지 않더라고. 나중에 후회하면서 온갖 애를 써 봤자 별수 없어. 항상 죄책감으로 찜찜하고. 흠! 내가 괜한 말을 했어. 어떻게? 나랑 같이 들어갈 텐가? 아니면 저기에서 샤워하고 푹 쉴 텐가?”

겸연쩍게 마무리한 공 만호가 가리킨 곳엔 조명을 분칠한 아름드리 소나무의 활짝 편 가지가 지붕을 덮은 1층 건물이 독특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차 팀장과 샤워나 하고 쉬겠습니다. 다녀오시죠.”

“그래. 잘 생각했네. 역겨운 건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 그리고 좀 전의 푸념은 잊어버리라고. 사람이 괜히 감정 탈 때가 있다잖아? 내가 그랬었나 봐.”

억지 미소였다. 가벼운 손짓으로 돌아서는 공 만호의 사뭇 달라 보이는 뒷모습에서 상길은 왠지 모를 애잔함에 옅은 한숨이 흩어졌다.

‘삼촌이었어? 실장은 그런 식으로 대하고?’

“참나! 완전 개 족보 따로 없네요. 돈이 싸가지겠지요? 가시죠! 피곤한데.”


   “와! 이게 무슨 일이야? 한국에서 제일 바쁜 시계가 여기서 퍼졌네? 왜? 밤낮으로 째깍, 째깍 돌더니 고장났나? 어? 너 얼굴이 왜 그래? 병났어?”

까칠한 빈정거림이었다. 그러나 유려한 곡선의 소파 등받이에 기댄 함 재익은 무반응으로 스르르, 팔걸이에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적당히 좀 해라. 재벌 총수 꼬락서니 하고는. 쯧쯧! 내가 말했지? 그 늙은이는 마지막 진물까지 빼먹는 착즙기라고? 그러다가 늙은이보다 먼저 세상 뜬다! 총수가 과로사라...? 크크!”

간이 양주 bar에서 위스키 잔을 채운 함 사익이 한 잔을 그에게 쥐여주고 맞은편에 앉았다.

“난 아직도 악몽을 꾸는데, 너란 놈은 아예 잊어나 보구나.”

“뭐? 갑자기 웬 뚱딴지 같.”

“살릴 수 있었어. 아니, 설사 아니더라도 조치는 해야 했었다. 왜 그랬어? 사고였잖아? 고의가 아니고. 왜 사고를 살인으로 만들었냐고? 왜? 왜?”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퀭한 눈가의 경련이 폭 패인 볼과 떨리자, 얼핏 떠오른 뭔가에 함 사익의 낯빛이 돌변했다.

“너! 너….”

“119에 신고만 해줬어도.”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럼 나는? 늙은이 몰래 미국에서 들어와 뽕 맞고 운전한 난 어떻게 됐을 거 같아? 우리 엄마를 남해로 쫓은 것처럼. 이때다 싶어 필리핀에 보냈을걸? 그래! 넌, 남 이야기지. 착한 본 마누라 자식이니까. 자극하지 마라. 그 늙은이가 아버지였던 건 5살까지였으니까. 또다시 그 일을 언급하면, 그땐 그 반쪽 피마저 다 뽑아버릴 테니. 너 역시 형이 아니라 피가 섞인 불쌍한 인간일 뿐이야.”

순간, 각기 다른 이유로 뻘겋게 충혈된 두 눈동자가 탁자 위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어진 함 사익의 침울한 목소리는 대상이 모호하게 실내를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믿어달라고 하지도 말고, 알아달라 하소연도 하지 마. 돌아오는 건 나약하다는 비웃음뿐이니까. 세상이 악독한 걸 너만 모르는구나. ”

bar에서 채운 위스키를 단숨에 비운 함 사익이 재익의 등 뒤에서 담뱃갑 크기의 둥근 캡슐 하나를 내밀었다.

“보아하니 파스는 다 떨어진 것 같고, 신세계나 한번 경험하고 올라가라.”

“딸깍!”

함 사익이 연 캡슐엔 투명한 앰풀과 일회용 주사기가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남는 게 아깝긴 하지만 별수 없지, 4분의 1. 그 정도로 충분하니까 나머진 버리고. 난 본채에 갔다가 올 테니까.”

그는 문을 향해 몇 걸음 가다 멈춰 간이 bar 벽 스위치를 조작해 실내의 조명을 조정해 주었다. 그러자 거실의 밝았던 중앙 등을 대신해 천장 테두리 핀 타입의 할로겐램프가 은은한 빛을 내며, 자동으로 닫힌 커튼 뒤의 등이 켜지면서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다. 음울하게 울부짖는 금관 악기의 장중한 서주.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였다.

“인샬라와 우아한 춤을 추기에 최고의 파트너다. 고조와 이완 타이밍이 기막힐 거야. 욕심내지 마라. 4분의 1이다.”

그러나 이미 중독 증세를 못 참은 함 재익의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와 헤벌쭉한 입. 환각으로 일그러진 그의 기묘한 표정을 씁쓸하게 쳐다본 함 사익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때, 현관 조명을 뒤집어쓴 물체와 맞닥쳤다.

“누구야?”

“흐흐! 함 실장아, 반갑구나!”

“헉! 너. 넌, 장..인.옥?”

가래를 긁어 올리는 기분 나쁜 음성에 소름도 돋기 전, 무자비한 발길질이 복부를 가격했다.

“우당탕, 탕!”     

   “미안해, 우 부장.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

본 채 뜰 앞으로 상길을 불러낸 공 만호가 난처한 웃음으로 건넨 것은, 파스라고 불리는 마약이었다.

“함 재익 대표가 이걸 찾을 텐데, 부탁하네.”

그가 서둘러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손을 들어주는 사이, 내부에 갇혔던 찢어지는 음악 소리가 문틀과 그의 귓전을 치고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

녹색 비닐 팩을 건네받은 우 상길이 잠시 창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지면에 뜬 달덩이가 이어진 별채로 걷기 시작했다.

“사는 게 밋밋한가? 하긴, 웬만한 걸로 자극이 되겠어? 아쉬운 게 없는 사람들인데.”

쓴웃음을 지은 우 상길이 섀도복싱과 발차기를 허공에 그리는 현란한 스텝으로 멀지 않은 별채로 향했다.

“어? 저건 뭐지?”

그가 별채에 거의 도착한 순간, 활짝 열린 문과 커튼 뒤로 쓰러지는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흐흐.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구나? 어쩌냐? 나도 설명할 재간이 없는데. 혹시 모르니까 네 놈도 죽어 봐, 그전에 면상도, 이빨도 싸그리 박살 나야겠지? 큭큭큭!”

한 손으로 목줄을 조인 장인옥의 섬뜩한 파충류 동공이 쏘아 보자, 컥컥대며 다리를 대롱대는 함 사익의 안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이마에서 힘줄이 돋았다.

“끄...끄극.”

핏물이 낭자했다. 출혈 부위를 알 수 없는 머리와 귀 주변의 피범벅, 괄약근이 풀린 입꼬리의 찐득한 타액과 살이 터져 핏물을 먹은 광대뼈가 드러난 처참함은, 저잣거리에 걸린 역적의 효수와 닮은 꼴이었다.

“술로 장난질은 하지 말았어야지. 차라리 찔러 죽였다면, 자비는 바라지마라. 나 역시 짐승이 됐으니까. 크크크.”

혼절 직전 얼굴이 닿은 장인옥에게서 풍긴 시체 썩는 악취에 후각이 마비됐다. 죽음의 공포보다 세로의 핏빛 동공인 악귀의 모습에 몸서리가 쳐졌다. 거실의 수석(壽石)을 머리 위로 쳐든 장인옥. 사익은 되레 영문 모를 평온함으로 체념한 눈꺼풀을 닫았다. 오래전 아버지의 핍박과 무시에 자결했던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환상과 그녀의 온화한 미소가 그것이었다. 그때였다. 목울대가 움찔하는 동시에 고막 깊이 찌그러진 환청이 꽂혔다.

“꺽!”

그 순간, 강한 충격과 함께 휘청인 장인옥이 나동그라지면서 테이블을 부쉈다. 누군가 사익의 목을 틀어쥐고 있던 장인옥에게 몸을 날린 것이다.

“실장님! 괜찮으십니까?”

의식이 몽롱한 그에겐 우 상길의 외침은 우주인의 유영처럼 느릿하게 맴돌았다.

“실장님!”

“크크크! 제 발로 찾아왔구나.”

어느새 박살 난 테이블을 걷어차고 일어선 장인옥이 우뚝 서서 내려보고 있었다.

“으. 으. 장..인옥이 살아났어.”

흐릿하나마 의식을 되찾은 함 사익이 상길의 옷깃을 움켜쥐고 더듬거리자, 흠칫 놀라 돌아본 그에게도 이미 죽었던 자가 음산한 미소로 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개 같은….”

제아무리 강단 있는 우 상길일지라도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은 충격 이상이었다.

분명 눈앞에서 죽었었는데, 온몸에 돋은 소름과 바늘처럼 곤두선 잔털에서 지독한 냉기가 돌았다.

“허! 말로만 듣던 재차의 인가?”

믿어지지 않은 현실의 빙의였을까? 공허하게 웅얼거린 상길은 한 걸음 물러서 그를 훑어봤다.

“그 눈깔! 어이없지? 죽어서 생각해 봐라. 내가 귀신인지, 아닌지. 크크크.”

그때야 장인옥의 눈과 마주친 우 상길이 끊어진 숨을 삼켰다. 검게 함몰된 안면에 박힌 눈동자. 그는 우습게도 이 상황에서 그가 사람이 아니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획!”

장인옥의 육중한 몸이 바람처럼 빠르게 우 상길에 날아들었다.

“퍽!”

등 뒤에 감췄다 뻗는 강력한 주먹이 순간적으로 움츠린 우 상길의 어깨를 가격했다. 그 순간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묵중한 범종의 파동처럼 전신의 뼈마디를 뒤틀었다.

“으으윽!”

단 한 방이 준 엄청난 파괴력. 우 상길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전에 겨뤘던 체육관에서의 그가 아니라는 떨림이, 저항 불가란 패배 의식으로 근육 세포를 쪼그라뜨리며 처음으로 두려운 감정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때? 죽음이 보이는가? 곱게 죽으면 안 돼! 꼴이 같아야 하지 않겠어?”

역시, 이번에도 끝말과 동시에 가슴으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눈앞의 구둣발이 심장의 껍질을 때리는 순간에도, 방어력을 발휘 못 한 그는 허공에 피를 토하며 간이 bar 구석으로 나동그라졌다.

“커억!”

그야말로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처음에 가격당한 어깨는 으스러진 듯, 힘이 없었고, 쌕쌕거리는 숨소리는 찢어진 폐부의 절박한 본능으로 목구멍에 가르랑거렸다. 압도당했다. 딱히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꺾인 기세는 반격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때였다. 체념으로 너절해진 의식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변화가 감지됐다. 멈춘 심장의 언저리에서 방울방울 터지는 기운이 찰나의 따스한 온기에서 화산의 마그마 열기로 들끓어 이해되지 않던 장인옥의 검은 기운이 온몸으로 전달됐다. 그러면서 부지불식간 떠오른 의문의 인물. 그가 죽음을 직면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할딱이는 가슴에 손을 얹어 준 이었다. 그때의 전신에 퍼졌던 신비한 온기와 그가 남긴 말이 기억의 저편에서 자막이 되어 살아났다.

-너의 선한 기운이 살렸다며, 널 필요로 할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상길은 이 시점에서 갑자기 왜, 그가 생각났는지 몰랐다. 그러나 신체 내부의 터무니 없는 변화는 의문의 끝을 그에게 맞추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호흡과 통증이 사라지고 단전 깊은 곳에서 용솟음친 뜨거운 기운이 백회혈에 갈무리되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후우! 후우!”     

   “함 실장아! 지옥에서 다시 보자꾸나!”

바닥에 나뒹굴던 수석을 집어 든 장인옥은 망설임 없이 함 사익의 머리통을 겨냥해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강타 된 것은 함 사익이 아닌 장인옥의 머리통이었다.

“퍽!”

“으악!”

장인옥을 가격해 허리가 꺾인 알루미늄파이프를 쥔 자는 우 상길이었다.

“휙!”

“따앙!”

연이어 내리친 파이프가 바닥을 때리고 울리자, 한 바퀴 굴러 피한 장인옥이 뒤통수에 손을 얹고 일어섰다. 장인옥의 섬뜩한 두 개의 눈동자가 빠르게 째깍거렸다.

“끄응! 정말 복잡한 놈이로구나!”

두 말은 없었다. 눈동자에 푸른 스파크로 살기를 끝까지 끌어올린 그가 쿵쾅쿵쾅 바닥을 울리며 달려들었다. 난장판인 거실이 아수라장으로 뒤집어졌다. 그들의 주먹이 가를 때마다 누군지 모를 고통의 비명이 터졌고, 술병이 깨지고 부서진 가구의 날카로운 조각이 찍히는 부위마다 피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둘의 싸움은 시간이 지나도 좀체 우열이 갈리지 않았다. 초반에 날린 일격으로 저항 불가의 두려움을 안겼던 장인옥은 차츰 의문이 일었다. 어린아이 다루듯 간단했던 그가 급변한 원인, 함 사익의 목을 쥐었을 때 돌진했던 충격은 그렇게 강력하진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우 상길의 파워는 오히려 그때의 온몸을 부딪친 것보다 훨씬 강한 파괴력이 실려있었다.

“퍽!” “웁!” “퍼버벅!” “끄윽!”

난무하는 주먹과 발길질로 뒤엉켜 구르고 날아가 꽂히는 혈투는 결판을 가를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격렬하게 계속되었다.

“꽈다당! 꽈당!”

이때, 천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요란한 빗줄기가 깨진 창문으로 아수라장에 몰아쳤다. 순간, 장인옥은 싸움을 멈추고 찢긴 커튼을 등진 채 미묘하게 웃었다.

“이제야 알겠어! 거래를 한 거야. 너도 그랬어. 크크크!”

핏물이 녹진한 검은 얼굴에서 깊게 일그러진 애잔함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래! 사실 함 사익 저놈 하나면 되는 일, 너와는 정당한 싸움이었으니까.”

가래 끓는 쉰 목소리로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선 소파 쿠션을 뒤집어쓴 함 사익이 잔뜩 겁에 질려 그들을 보고 있었다.

“네, 네!”

그런데 갑자기 짧게 머리를 틱틱거린 장인옥이 누군가와 대화하듯 했다.

“함 사익이! 정말 운 하나는 타고났구나, 명줄이 늘었어. 하지만 오늘부턴 똥 쌀 때도 불안해야 할 거야, 넌 죽음 목숨이니까. 크크. 그리고! 다음에는 둘 중 하난 죽어야 끝날 텐데. 나는 복수, 네 놈은 무엇을 위한 걸까? 카카카카!”

그는 조롱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 외등을 거칠게 가르는 은빛 빗살무늬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사, 사..익. 사익아! 재익이가 죽었나 봐? 죽었어! 재익이 죽었어!”

뒤집힌 소파 틈에서 함 재익을 발견한 공 만호가 그를 끌어안고 소리치자, 벽에 기대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함 사익이 맥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 이런. 제기랄!”

“너, 약을 얼마나 준 거야?”

창백한 낯빛으로 거품을 턱밑으로 흘리는 함 재익의 입가에선 잔여 거품이 뽀글거리고 있었다.

“아, 아! 씨발! 다 찔렀네, 멍청한 새끼! 몇 번을 말했는데. 악! 아 악!”

눈이 뒤집힌 사익은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내던지며, 이미 초토화가 되어 버린 거실을 아예 뭉개버리려는 듯 미쳐 날뛰었다. 괴물로 나타나 자기를 죽이려는 장인옥만으로 심장이 터질 지경인데, 때마침 은밀한 마약 파티를 벌이는 이곳에서 죽어버린 함 재익은 예상치 못한 큰 문젯거리였다. 재벌 총수였다, 노숙자도 깡패도 일반인도 아닌, 굴지 그룹의 젊은 총수가 마약 과다 투약으로 별장에서 사망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그다음은 불 보듯 뻔한 일. 언론과 검, 경. 어쩌면 정치권도 한바탕 뒤집어 질 것이다. 우선 모든 시선과 의혹이 집중될 이곳을 정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공 이사님. 아니, 삼촌! 저 뽕쟁이들 빨리 치워요.”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쟤들 지금 완전히 늘어졌어. 감당 안 돼!”

“아, 씨발 안되긴? 그럼, 쟤들 차! 차는 몇 대 없잖아? 올 때 밴으로 픽업한 애들 많잖아요? 그 차들 어디든 갖다 처박아! 여기로 연결 안 되는 먼 데로. 저기 차 팀장이랑 점주. 우 부장도 데려가요!”

“아니, 어떻게 하려고?”

거실을 불안하게 오가든 함 사익의 초조했던 표정이 그새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소파 뒤로 고개가 꺾인 함 재익을 내려보다가 작심한 듯 큰 숨을 쉬었다.

“윽!”

순간, 깊게 들이 내쉰 숨에 자극받은 가슴이 통증으로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이렇게 해요. 최대한 빨리 뽕쟁이들을 재워요, 술에 수면제를 타서라도. 그리고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가요. 아무도 못 나오게.”

“...?”

“음악과 조명, 다 꺼 버리고. 그리고 재익이를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쩌려고?”

“점주에게 119에 신고하라고 하세요. 점주가 기사로 따라온 겁니다.”

“119? 그러다 발각되면? 인샬라도 24시간은 성분이 검출되는 걸 잊었어요?”

습관은 무서웠다. 처음의 황망한 상황에선 삼촌 조카였던 그들은 불과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평소의 관계가 되었다. 어쨌든 119에 신고하라는 지시가 당혹스러운 공 만호는 답답함을 인상을 찌푸려 반응했다.

“그러니까. 마약 과다 투여로 사망한 걸 알리겠단 말입니다. 재익이는 혼자 속초로 내려와 점장을 불러 별장에 온 겁니다. 재익이 꼴을 보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증언할 사람은 많을 거고, 답 나오잖아요? 그걸 풀려다 치사량을 주입한 거지.”

그는 드러내진 않았지만, 짧은 순간에 발휘된 기지를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언뜻 그의 마지막 유언이 돼 버린 말이 송곳으로 머리를 찔렀다.

‘씨발! 어쩌라고, 그땐 내가 살아야 했잖아. 알았다! 이번 일만 끝내고 너와 그 사람을 위한 위령제를 올려주마, 됐지?’

공 만호는 화가 치밀었다.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함 재익 역시 어릴 때부터 자기를 따랐던 가까운 조카였다. 비록 본 부인의 자식이었지만 반듯한 성품의 그는 어른이 되고, 총수가 되었어도 변하질 않았다. -HAM’S 리테일-은 그가 총수로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함 사익을 위해 한 일이었다. 그전 회장인 아버지의 불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동생에게 분사시킨 것이었다.

“사익아! 재익이를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보내면 안 돼. 가족 중에 유일한 네 편이었던 형을 이렇게 보내? 진심이냐?”

“...”

집안 어른이 되어 나무라는 공 만호에 움찔한 그가 피가 응고된 입술을 굳게 다물고 지켜보는 우 상길과 차민주를 쳐다봤다. 격투의 상처 그대로 온전치 않은 우 상길의 눈빛이 특히 차가웠다.

“내가 그랬어? 내 말을 무시해서 그런 거라고! 그럼, 삼촌이 말해 보든지? 그냥 자다가 죽었다고. 그러면 사람들도, 언론도 잘도 믿어 주겠네?”

함 사익은 바닥의 돌덩이를 주워 힘껏 간이 bar 거울로 집어 던졌다.

“와장창! 퍼벅!”

그나마 성했던 한 면의 거울과 남아있던 술병들이 폭탄을 맞은 듯 사방으로 파편을 뿌려댔다. 그리고 발밑으로 튕겨 나온 돌덩이. 그것은 자기의 두 개 골을 부술뻔한 수석(壽石)이었다.

“공 이사님!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또 하나! 별장 주변의 CCTV를 몽땅 뒤져서 그놈을 찾아요. 이 골짜기까지 걸어오진 않았을 터, 분명 차가 있을 겁니다. 차 번호와 차종으로 주행 경로를 알아내세요. 누구한테 부탁할 진 알고 있죠? 번호를따고 나면 내용을 전부 삭제하고, 연결선은 훼손시키세요. 애초부터 CCTV는 관리 부실로 고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시 장인옥이 사라진 깨진 창문을 부릅뜨고 보다가 낮게 말했다.

“당장 총이 필요합니다. 아주 강력한 걸로.”

함 사익의 손엔 수석이 들려있었다. 불과 반 시간 전만 해도 자기의 뇌수를 뒤집어쓸 뻔한, 아끼고 감상했던 연봉형 산수경석이었다. 그것의 주봉이 두 개 골을 깨면 다른 봉우리들은 뇌수를 빨아 정기를 채웠을 것이다. 그는 수석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피가 굳어 뻣뻣한 입꼬리를 말고 읊조렸다.

‘장인옥, 찾아갈 테니 기다려라. 이번엔 아주 짓이겨 갈아 마셔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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