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작가 Dec 03. 2019

수제 슬라임 만들기


슬라임 만들기가 재밌는 동시에 어려운 이유는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엘머스 베이스의 슬라임은 숙성 과정이 하루 이틀이면 끝이지만, 물처럼 투명한 클리어 슬라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1주일간을 꼬박 기다려야만 성공 여부를 알 수가 있다.

한번 만들어놓으면 로또를 사놓고  기다리는 사람마냥 설렘과 초조함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1주일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기다리다 뚜껑을 열었는데 슬라임이 아닌 탱탱볼이 만들어져 있을 때! 혹은 투명하지 않고 부옇게 때 탄 것 같은 모습일 때!


당신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포기하거나 혹은 다시 도전하거나.


하지만 슬라임을 한 번 만들어본 사람은 대부분 운명처럼 후자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사람에게 손에 닿지 않을 만큼 높은 목표를 제시하면 포기하기 십상이지만, 발끝을 조금만 더 들면 잡힐 것 같은 목표를 제시하면 다시 도전할 마음이 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슬라임의 재료는 문방구만 가도 다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별게 없고, 만드는 과정도 우유에 미숫가루 타 먹는 수준으로 간단하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기뜀틀 1단에서 높이뛰기는 못 하겠다 선언하 이른 감이 있다.


사실 실패하려고 노력해도 실패하기 힘든 수준인데 그런 걸  실패했다는 생각에 약간 자존심도 상하고 오기도 생긴다.      


나 역시 첫 슬라임을 망치고, 바로 문구점으로 달려가 물풀을 다시 샀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초딩들에게 선생님이라 부르리!라고 외치며...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훌륭하신 초딩 선생님들의 슬라임 레시피를 유튜브와 블로그 등에서 뒤지고 있었다.)    

  

슬라임은 그 간단한 제조 과정에 비해 매우 까다롭고 예민한 구석이 있는 놈이다. (슬라임에게 혈액형이 있다면 아마 B형일 거다.) 과장하자면, 표지는 초등학교 산수인데 내용은 수학의 정석이랄까?


풀이나 액티의 비율이 조금만 달라져도 질감이 확 달라지고, 슬라임을 숙성시키는 방 온도에 따라서도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난다. (유튜브에서 보고 똑같이 만들었는데 실패했다면 숙성시키는 온도차가 문제였을 확률이 높다.) 어떤 브랜드의 물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만드는 비율을 다르게 해야 한다.


내가 슬린이(슬라임 어린이의 줄임말로 슬라임 초보를 이르는 )였던 시절만 해도,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제대론 된 슬라임 레시피를 찾기가 힘들었다. 자신만의 비법을 공개하지 않는 잘 나가는 셰프들처럼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려줘도, 비율은 공개하지 않는 영상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과학자의 마음으로, 대용량 물풀 단지를 옆에 끼고 슬라임 연구에 착수했다. 밤에는 대본을 쓰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 먹을 때까지 슬라임을 만들었다. (작가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웬만한 열정 가지고는 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대용량 물풀을 다 사용할 때쯤 나는,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하고, 뚝뚝 끊어지지는 않되, 손에서 쉽게 녹아 달라붙지 않는 완벽 농도의 슬라임 만들기에 성공했다. 예히!

    

클리어 슬라임 만들기

* 붕사를 이용한 슬라임 만들기.

(렌즈 세척액과 베이킹 소다로도 가능)


준비물 : 물풀, 물, 붕사. 글리세린      


1. 먼저 따뜻한 물 250ml에 붕사 5ml를 넣어 액티베이터를 만든다.   

2. 물풀 120ml에, 물 25ml, 글리세린 6ml를 넣고 1에서 만든 액티베이터를 28ml 정도 넣은 후 잘 젓는다. 손은 대지 않고 주걱으로만 저어야 나중에 투명한 슬라임이 완성된다.

3. 1주일 정도 기다리면, 물처럼 투명한 슬라임 완성!     



한번 성공하고 나니, 우리 집 슬라임 제조업은 활기를 띄었다.


집안에 있는 모든 락앤락 통에는 슬라임이 숙성되었고, 엄마가 쓰지 않는 가짜 진주 목걸이는 희생되어 슬라임에게 바쳐졌으며, 10년 동안 갓 지은 밥을 푸던 밥주걱은 물풀을 휘젓게 되었다.


문구점에 가면 슬라임 안에 넣을 스팽글과 파츠를 쓸어 담았고, 다이소에 가면 슬라임에 넣을 수 있는 재질의 모든 물품들을 사 모았다. (헤어 구르프의 철심을 빼고 고무 부분을 잘게 잘라 넣어 ‘시리얼 슬라임’을 만들고, 실리콘으로 된 노란 식탁 매트를 잘라 넣어 ‘치즈 첵스 슬라임’을 만들고, 진한 밤색의 식탁 모서리 보호대를 잘라, ‘초코칩 슬라임’을 만드는 식이었다.)     


방 한 면이 슬라임을 담은 통들로 꽉 찰 때쯤, 나는 30대 후반인 친구들은 원치 않고, 조카는 너무 어려서 만지게 해 줄 수 없는 이 슬라임들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나 혼자 보고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다니...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비운의 화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애 같은 취미에 빠져, 만날 때도 슬라임을 몇 통씩 챙겨 나오는 나를 생소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남친(지금의 남편)은 밤새 주걱으로 물풀을 젓다가 물집이 생긴 손가락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이 정도로 계속 만들 거면 차라리 영상을 찍어서 인스타나 유튜브에 올려보라고 했다. 그러면 버려도 덜 아깝지 않겠냐고.      


“나더러 슬라임 유튜버가 되라고?”     


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고 깔깔 웃었다.      


슬라임 유튜브

3주 정도 후, 나는 첫 슬라임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1주일이 되도록 조회수는 ‘9’였고 구독자는 엄마와 남친, 지인을 포함해 3명이었다.      


그 후로 6개월이 조금 지나, 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만 명을 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슬라임이 유행한 3가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