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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수학 점수 30점에서 만점으로 수직상승

 아이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냈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면 간식을 먹고 책을 읽기 시작해서 저녁 먹을 시간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교과서 읽는 것도 좋아해서 사회나 과학과목도 곧잘 따라가고 교과 관련 동화도 많이 읽었다.


 당시 나는 시끄러운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각 교과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동화를 먼저 읽도록 했다. 과학 동화, 경제 동화, 한국사 관련 책을 먼저 읽고 대화를 나누고 교과서를 읽혔다.


 아이도 함께 수업에 참여하긴 했지만 주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코칭만 했다. 그날 공부할 분량을 스스로 체크하고 시간, 양, 질을 먼저 기록하게 했다. 그 외에 문제 풀기나 채점, 오답 체크 등은 일체 손대지 않았다.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고 스스로 궁금해할 때까지 기다렸다.


 시끄러운 공부방에서 아이들은 서로 묻고 답하기를 즐기고 수다 속에서 문제 해결점을 찾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나는 각 교과를 나누어 공부하기보다는 관련 동화를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수학을 공부하더라도 교과의 영역을 허물 수 있도록 도왔다.


 예를 들면 국어 교과에서 문장을 발췌하고 수학 문제를 만들어 스스로 풀 수 있도록 했다. 또 실생활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가지고 와서 논제를 만들도록 했다. 스토리텔링 수학은 물론이고 주산, 암산 수업도 병행했는데 그 속에서 몇 명의 아이들은 몰랐던 자신의 탤런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다.


“엄마 나 수학 시험을 봤는데 점수가 30점이에요”


“그래?”


“저 오늘부터 자기 주도 학습할래요.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날부터 아이는 수학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다. 아이가 2학년 때 두 자릿수 더하기 두 자릿수 문제를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 수를 더해서 풀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둘이 닮아서라고 답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논리가 이상하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수의 개념이 아직 잡혀 있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나는 딱 한 가지만 알려줬다.


“수학은 약속이야. 십의 자리 수와 십의 자리 수를 더하는 약속, 일의 자리 수와 일의 자리 수를 더하는 약속”

 이후로 아이는 수학을 싫어하지 않았다. 교과 관련 동화를 읽을 때도 수학 동화부터 읽었다. 수학동화를 읽고 교과서를 읽고 개념 정리를 했다. 정리된 개념은 친구나 엄마, 혹은 투명인간을 만들어 놓고 설명했다. 그런 다음 관련 문제를 풀고 스스로 채점한 뒤 오답 체크를 위해 문제를 필사하고 다시 풀었다.


 다음 시험에서 80점, 그다음 시험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당시 모든 교과가 서술형으로 출제되었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더욱 유리했다.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였고 개념을 정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며 관련 문제를 서술형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선생님께서는 동그라미만 그려서 주기가 미안해서 코멘트를 단다고 하시며 ‘정확한 문제 풀이와 개념 정리가 완벽하다’라고 적어주셨다. 아이는 자신의 시험지를 보여주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했고 동시에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냈다.


 어릴 때부터 책만 읽혔고 다른 장난감을 사주지 않았다. 일부러 사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어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집 앞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5살이 되던 해에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는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책을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는 자주 도서관을 방문했다. 읽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그 날 읽을 책을 대여했다.


 책을 대여해 돌아오면 아이는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눈빛을 한참이나 쏘아댔다. 5살이 되면서 책을 더 많이 읽게 된 아이는 내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씩 찍으면서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공부가 깊어지고 책 읽어 주기를 하루씩 건너 띄면서 아이는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 5살 때부터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찍으며 읽어주었던 것이 효과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아이는 책을 읽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한 날은 대학원 임원 투표에 필요해서 큰 전지를 5장 구매했는데 아이가 한 장 달라고 했다. 자신의 몸보다 큰 전지에 바다를 그리고 인어공주를 그리고 바닷속 동물을 하나씩 그려 넣더니 순식간에 전지를 꽉 채웠다. 그리고 재잘재잘 잘도 떠들어댔다. 책과 그림은 아이가 자라는 동안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 몇 달이 흘렀을 때 우리는 각자의 책에 빠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책을 읽으며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 물었다.


“엄마, 개가 너무 불쌍해요. 그리고 감동적이에요”

아이가 읽고 있었던 책은 『플란다스의 개』였다. 6살 아이가 책을 읽고 훌쩍이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른스럽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책이면 다 된다고 믿고 아이를 키웠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물론 몸으로 노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아이가 14살이 되었으니 운동으로 체력도 키우고 에너지도 채우며 뿜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한글을 깨치고 공감 능력을 길러주었으며 국어뿐 아니라 다른 교과 공부에도 바탕이 되어 어렵지 않게 초등 공부를 스스로 해낼 수 있었다. 중고등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독서력이 떨어지면 어휘력은 당연히 떨어진다. 요즘 아이들이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요즘 판타지 소설에 쏙 빠져 사는 아이를 나는 말리지 않는다. 아이의 꿈은 웹툰 작가이다. 그것도 말리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자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이의 졸업을 앞두고 진학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3년 동안 중, 고등 과정의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17살부터는 원하는 공부를 하라고 했다. 대학이 아니어도 좋고 포토샵이나 그림에 관련된 것이어도 좋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니 북 디자인도 매력적이고 그림과 책이 융합된 직업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세상의 일을 다 알 수 없지만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된다. 아이의 선택에 따라 함께 걷고 때로는 떨어져 걸으면 될 일이다.


 수학 점수가 30점이어도 아무 상관없었다. 수학은 약속이라는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스스로 찾아낼 줄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공부는 스스로 동기가 부여됐을 때 추진력이 달린다. 효과도 엄청나다. 기다려주면 된다. 아이가 스스로 방법이 궁금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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