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06. 나, A4 2쪽

42년

 가난한 집 늦둥이, 무남독녀로 태어나 큰 역경 없이 자랐다. 가난한 것 말고는 흠잡을 것 없는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했고 어머니도 힘을 보탰다. 우리 가족은 단란하고 행복했다. 1991년 봄,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사고는 가족의 행복과 미래의 희망을 함께 가져갔다. 다시 일어설 힘을 주지도 않고 아버지의 무릎을 꺾어 놓았다. 몸이 주저앉으니 마음도 덩달아 힘을 잃었다. 마음이 힘을 잃으니 병도 쉽게 찾아왔다. 아버지 마음속에서 2년간 함께 생활한 의처증은 또 한 번 우리 가족을 병들게 했다.


 어머니의 사회생활도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안으로 또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건강했던 육체와 유쾌한 정신은 어디론가 떠나고 우울하고 나약한 몸만 남았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낼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 죽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아버지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엄마는 고스란히 받았다.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그렇게 10대를 보냈다.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내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짐승을 만나고 나는 맨발로 세상에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어느 날, 내게 다시 물을 주기 시작한 것이 바로 배움이었다. 배우면서 나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책을 만나고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배우기도 했다.


 내 아이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시작한 공부도 습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배우고 가르치는 삶, 내가 행복할 수 있고 남도 행복하게 만드는 삶,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 남에게도 가치 있는 일이 되는 그야말로 가치 있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30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육아하며 배우는 삶은 나를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삶의 터전을 옮겨 온 것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가장 큰 변화 요인은 책이었다. 책은 나와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사는 곳과 만나는 사람 그리고 책, 모든 것이 달라졌다.


 박사학위 취득을 포기한 것도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배움도 좋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가능했다. 길이 아니면 돌아서 갈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박사과정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삶이 좋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좋다. 진로를 함께 고민하는 것도 행복하다. 독서를 통해서 생각이 커지고 자신의 삶에 접목시키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좋다. 내가 그랬듯이 아이들도 책과 스승을 통해서 제일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이 잘하는 일이 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했으면 좋겠다.


 나의 인생이, 나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교생 시절, 국어시간에 3분의 2의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들어가는 1학년과 3학년 교실에서는 결코 자는 학생이 한 명도 없게 하리라 다짐하고 6시간 동안 수업 교구를 만들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오려 자석을 붙이고 조별 이름도 만들어 첫 수업을 했다. 조를 짜는데 3일이 걸렸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름을 떼고 옮겨 붙이며 조 짜는 게임에 빠져 한 아이도 엎드려 자지 않았다. 조를 짠 다음에는 무조건 토론 수업을 했다.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한 명씩 발표를 하고 조별 점수를 붙이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뽑기를 해서 선물을 주었다.


‘희(hee) 스토리'시간을 만들의 나의 자격증을 화면에 하나씩 띄어놓고 강의를 했을 때에는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후 나는 전 교실을 돌아다니며 같은 강의를 해야 했다.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편지를 주며 고맙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됐다면서 자격증부터 취득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전화로 영어독서와 학습 코칭을 하기도 하는데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과 학습동기부여 방법을 궁금해하신다. 유선으로 하는 코칭이니 한계가 있어 글로 정리해서 보내드리면  하나씩 실천해 보시며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책을 쓸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내 경험을 책으로 남기면 내 아이도 보고 다른 엄마들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막연한 생각이었다.


 평소 아침 일기를 쓰고 단기 및 장기 계획을 기록하긴 하지만 책으로 나의 이야기를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은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 부모님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도 무척 좋다. 앞으로도 아이들, 어른들 가리지 않고 계속 만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글 쓰는 삶을 살기로 했다. 기록을 남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 시작했다가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로, 이제는 위로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내가 경험을 나누기를 좋아하고 개인의 어려움이 사회적 어려움이 되기 전에 함께 극복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5년간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는 반드시 그 뒤에 부모의 문제 행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의 폭력이나 무관심 혹은 부재에서 아이는 나름대로의 방어기제를 만들어 내고 드러낸다.


 수업 중에 소리를 지르거나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는 물론, 자해하고 도망치는 아이도 여럿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모와 상담을 했는데 열이면 열 가정에서 문제가 불거진 경우였다. 상담이 끝날 무렵 나는 반드시 책을 권하는데 엄마의 마음을 치료하는 책이나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책을 권하면 꼭 읽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책 읽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결심은 쉽게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함께 책 읽는 모임에 초대하기도 하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쓰고 싶어 진다. 읽은 것을 정리하고 싶고 내 경험을 비추어 새로운 것을 메모하고 싶고 작가의 말에 토를 달고 싶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면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속에 있는 것을 꺼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나는 엄마들이 모두 글을 썼으면 좋겠다. 엄마가 글을 쓰면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고 나를 알면 아이를 바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이를 바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미쳐 날뛰는 아이도 안아서 달랠 수 있게 된다.


 내가 나로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이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나를 돌아보지 못했던 삶에서 진정한 나를 찾고 오로지 나로 사는 기쁨으로 하루를 채우는 삶으로 건너오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삶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나의 생각, 말씨, 행동, 습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없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하고 냉수로 샤워를 하면서 하루를 연다. 뇌에 산소를 보내는 호흡법과 2분간 호흡 멈추기로 에너지와 활력을 채우고 면역력을 높이며 혈관 건강까지 챙긴다. 거울을 보며 1분간 신나게 춤을 추고 거울 속 나를 보며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세상의 만물에게 감사를 보내고 아침 일기를 쓴다. 오늘도 나를 사랑하는 하루를 보내겠노라고 다짐하는 글쓰기다. 내가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05. 욕하는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