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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애늙은이는 만들어진다.

지랄할 수 있는 환경이 감사해.

 아이는 6살이 되면서 스스로 몸을 씻고 밥투정을 끊었다. 환경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애어른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한다. 엄마가 자신을 어쩌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동안 아이는 엄마가 잘못될까 불안하고 힘들었을 터. 그때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버려야 될 것들로 꽉 차 있었다. 


 나는 아이가 어른스럽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때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형제자매가 없었던 나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대하듯 아이를 대했다. 내가 고민이 있을 때는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머릿속이 생각들로 가득 차서 힘들다고 하면 아이는 말했다.


 “엄마, 꼭 필요한 생각만 남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8살 아이가 말하는 명쾌한 대답은 나를 일깨웠다. 내가 왜 생각들을 꽉 채워놓고 괴로워하고 있나? 생각은 내가 만드는 건데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 생각을 버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쓰레기통에 쳐 넣은 생각들은 다시 내 머릿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아이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필요 없는 생각은 깨끗이 치울 줄도 알았다. 화나거나 마음이 아픈 일이 생기면 아이는 책을 보며 마음을 진정한 후 나에게 이야기하고 풀었다. 시간을 가질 줄 아는 지혜를 어디서 배운 것일까? 나보다 더 지혜로운 아이는 나에게 스승이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더 기댔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한참이 지났을 때 나의 그런 태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아이를  친구처럼 생각하고 고민을 나누거나 어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일을 다 하길 바랄 때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처음엔 당연했던 것이 내가 스스로를 치료하고 돌아보니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부담스러워했다. 


“엄마,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에요. 아직 어린아이라고요.”

아, 그랬구나.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부담스러워하고 있었구나. 엄마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고 떼도 쓰고 싶었겠구나.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를 다 자란 어른으로 대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아이는 거짓 어른이 되고 있었구나. 그 나이에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었구나. 스스로 자신을 치유하고 엄마까지 보살피느라 아이는 억지로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모든 것이 안정되고 늦게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써도 다 큰애가 왜 그러냐는 핀잔만 주었구나. 엄마는 진정 너를 모르고 엄마가 한 일을 몰랐구나. 


“아가야, 미안하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사과했다.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마음껏 어리광 부리고 떼도 쓰라고 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즉시 이야기하고 책은 얼마든지 사 줄 테니 엄마 휴대전화에 서점 장바구니에 얼마든지 담아두라고 했다.


“엄마! 나, 아기 아니에요!”

 하더니 익살스럽게 웃으며 나의 휴대전화를 들고 책을 마구 담기 시작했다. 나는 안도하며 웃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설익은 감은 먹지 못한다. 자라지 않은 태아를 꺼내면 죽는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그 시기에 꼭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 사람이 살면서 꼭 채워야 한다는 지랄! 아, 첫 째 아이는 그 지랄을 별로 한 적이 없는데 언제 터지려나,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나! 주는 대로 받아야지. 내가 뿌린 씨앗이니 그대로 거둘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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