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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소설 <강남역 미아> 1장 3화

옥상의 회장

by 글사랑이 조동표

기업 소설 <강남역 미아> 1장 3화

- 옥상의 회장


회의실 안은 어둠과 숨소리만 가득했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복도에서 강민석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었다.


“윤 대리 어디 갔습니까?”


누군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방금까지 있었는데...”


“건물 안에 있습니다. 카드 사용 기록 확인하세요.”


감사팀 남자 둘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었다. 익숙한 사람들 같았다. 누군가를 찾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잡힌 사람을 확인하는 사람들.


도윤은 낮게 중얼거렸다.


“준비가 철저하군.”


윤서진은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강 전무는 늘 늦게 움직이지만, 움직일 땐 끝을 봐요.”


“당신은 그걸 잘 아네.”


“곁에서 오래 봤으니까요.”


도윤은 그녀를 바라봤다.


“곁에서?”


“회장실에서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충분했다.


도윤은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윤서진은 단순한 비서실 직원이 아니었다. 회장의 시야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


문밖 발소리가 멀어졌다.


윤서진이 속삭였다.


“지금.”


둘은 회의실 문을 빠져나와 반대편 복도로 달렸다. 센서등이 켜졌다 꺼지며 그림자를 쪼갰다.


“엘리베이터는?”


“감시 중이에요. 계단.”


그녀는 망설임 없이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옥상까지는 두 층.


도윤은 계단을 오르며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체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조직 안에서 숫자와 문서로 싸웠던 사람에게 이런 밤의 추격전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하게 익숙했다.


회사는 늘 이런 곳이었다.


다만 대부분은 낮에 미소를 띠고 진행될 뿐.


옥상문을 밀자 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서울의 밤하늘은 완전히 검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이 어둠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멀리 강남역 네거리가 빛의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옥상 중앙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코트, 은빛 머리, 곧은 자세.


우메다 회장.


그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늦었군.”


윤서진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우메다는 그제야 천천히 돌아섰다.


도윤은 여러 회의실에서 그를 봐왔다. 늘 단정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상대가 말하는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얼굴.


하지만 오늘 밤 그의 눈빛은 달랐다.


차갑기보다 계산적이었다.


“한 상무.”


“이제 상무는 아닙니다.”


우메다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직함에 집착하는 사람은 큰일을 못 하지.”


“잘라놓고 큰일을 논하십니까?”


윤서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만족한 듯했다.


“좋아. 아직 기개는 남아 있군.”


우메다는 손을 내밀었다.


“USB.”


도윤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안에 뭐가 있죠?”


“당신이 궁금해하던 답.”


“왜 저한테 주셨습니까?”


우메다는 한 걸음 다가왔다.


“강민석이 너무 빨리 커졌거든.”


바람 소리만 잠시 지나갔다.


도윤은 그의 말을 곱씹었다.


너무 빨리 커졌다.


그건 칭찬이 아니었다.


“매출은 늘었고, 주가는 올랐고, 본사는 만족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문제는 뭡니까?”


“성과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우메다는 짧게 답했다.


“나는 숫자를 믿는다. 그러나 숫자가 아름다울수록 의심하지.”


도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저를 미끼로 던졌군요.”


우메다는 부정하지 않았다.


“강민석은 당신을 제거하려 했고, 나는 그가 어떻게 제거하는지 보고 싶었지.”


윤서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조차 이 말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도윤은 천천히 USB를 꺼냈다.


“회장님은 사람을 시험합니까?”


“경영은 시험의 연속이야.”


“아니요.”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도박입니다.”


짧은 정적.


멀리 옥상문 아래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철컥.


윤서진이 즉시 돌아봤다.


“왔어요.”


우메다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예정된 장면처럼.


계단문이 열리며 강민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감사팀 두 명.


그는 숨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 역시 여기 계셨군요.”


그리고 도윤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퇴직 첫날치고는 바쁘십니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민석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USB로 옮겨갔다.


순간 그의 미소가 아주 조금 사라졌다.


“그건 회사 자산입니다.”


“아니,” 도윤이 말했다.


“이건 네 인생이 담긴 물건 같던데.”


강민석의 눈빛이 처음으로 차갑게 식었다.


우메다가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좋아. 이제 시작하지.”


도윤은 그때 깨달았다.


오늘 밤 회장은 진실을 찾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쓸모 있는지 고르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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