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17층
기업 소설 <강남역 미아> 1장 2화
- 불 꺼진 17층
서초동 본사 건물은 밤이 되면 얼굴이 달라졌다.
낮에는 유리 외벽이 번쩍였고, 로비에는 향 좋은 공기가 흘렀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드나들었다. 누구나 이 건물이 안정과 성공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밤 열한 시가 지나면 건물은 다른 존재가 되었다.
불 꺼진 층마다 침묵이 쌓였고, 복도는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만 남겼다. 낮에 오가던 인사말은 모두 증발하고, 승진과 해고와 배신만 벽에 스며 있는 듯했다.
한도윤은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주차장 옆 후문은 아직 카드키가 살아 있었다. 인사 발령은 났지만 전산 반영은 내일 아침일 가능성이 컸다. 조직은 느리게 움직였고, 음모는 늘 그보다 빨랐다.
삑.
문이 열렸다.
도윤은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택했다.
17층.
임원실과 전략기획실, 회장 비서실이 있는 층이었다. 낮에는 가장 많은 웃음이 오가지만, 가장 적은 진심이 존재하는 곳.
계단을 오르며 그는 USB를 다시 만져보았다.
조작된 숫자.
그 한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3년간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일본 본사는 한국 지사를 모범 사례로 치켜세웠고, 강민석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언론 인터뷰, 사내 타운홀, 승진. 모든 조명이 그에게 향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도윤이 직접 병원 현장을 돌며 느낀 처방량과 본사 보고 수치는 미묘하게 달랐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오래 현장을 본 사람이라면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차이.
그는 그 불편함 때문에 밀려났을까.
17층 방화문을 열자 복도의 센서등이 켜졌다.
차가운 흰빛 아래, 사무실은 모두 잠든 듯 고요했다.
그때였다.
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도윤은 몸을 멈췄다.
복도 끝 회장 비서실 앞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윤서진이었다.
검은색 코트, 묶어 올린 머리, 손에는 얇은 서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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