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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dere Dec 12. 2023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워

그 모습이 이제는 흐릿한 머릿속에 있기에 너무나도 소중한 어릴적 그때

외할아버지 댁은 충청도의 깊은 시골마을이다. 

청청한 하늘과 푸르른 논밭 울창한 숲 속 사잇길로 올라가면 펼쳐지는 마을.

아이들 동화책 속에 흔하게 펼쳐지는, 하지만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없는 마을 풍경일게다. 

녹진한 푸른빛이 가득한 논을 지나며 마을 입구 언덕으로 들어서면 양옆으로 우뚝 솟은 나무들이 뙤양볕 아래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사이로 내려 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름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면 길목 좌측 귀퉁이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비록 슈퍼는 외할아버지댁에서 멀었지만 항상 몸과 마음은 가까웠다.

작은 시내를 가로지르는 다리도 건너고 또 마을을 이리저리 구불구불 가로질러 가다보면 

다시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외길이 나온다. 

외길 우측에는 난간도 없이 너무 커서 빠질까봐 무서웠던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를 우측으로 끼고 걷다보면 좌측에는 포도밭이 펼쳐졌다. 

그 뒤를 따라 걷다보면 나오는 농장에서 눈망울이 초롱한 소도 만나고 큰 뿔을 가진 사슴도 만났다. 

그리고 또 나오는 갈래길 좌측에는 아주 큰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었고 그 아래 넓은 평상에는 할매들이 부채질을 하며 담소를 나눴다. 

그 길을 따라 약간의 언덕을 내려가며 몇집을 지나다 보면 오래된 낡은 기와집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우리 외할아버지 집이었다. 

집앞의 작은 또랑에는 맑기도 오물이 섞이기도 한 물이 흘렀고  그 속에는 붉은 실지렁이가 흐느적 몸을 흔들었다.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에는 놋쇠 손잡이가 달려있었고 그 입구 우측에는 커다란 황소가 디비 누워있던 외양간이 있었다.

가끔 빨간 누비한복을 입고 황소가 흥분할까 무서워 대문 앞을 뛰어 오고갔던 기억이 난다.  

집 마당에는 지하수를 퍼올릴 우물펌프(작두펌프) 가 있었고 그 물은 참으로 차가웠다.  

작은 우물안에 밭에서 따온 큰 수박을 던져놓고 시원해지면 맛있게 먹곤 했다.  


한여름 시골의 강한 태양이 대지를 불태우면 큰 다라에 차가운 우물물을 받아 물놀이를 했다.

어느날은 어른들을 도와 밭에 나가 비닐을 덮기도 하고, 고구마도 캐고, 수박도 따왔다. 

밭일이 끝나면 경운기 뒤에 걸터앉아 뒤로 날리는 흙먼지를 재미지게 바라보며 외삼촌이 대강 부수어 한조각 나눠준 수박을 아구아구 먹었는데 뜨거운 태양빛에 농축된 달콤함이 진했다. 


잔치를 벌이는 날도 있었는데 그날은 직접 잡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대문 앞 또랑을 넘는 작은 돌다리 위에 돼지 다리를 잡아 묶어 두고 멱을 따서 피를 흘려 보낸다. 

그렇게 피를 다 빼면 어른들이 돼지를 해체 하고 붉은 다라에 가득 고기가 차면 골방에 놓였다.  

출출해지는 밤에는 작은외삼촌은 칼로 쓱싹 돼지고기 몇첨 잘라와 아궁이 불에 구워주었는데 그 찰진 맛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어떤 맛이었을까? 분명 엄청 맛있었을텐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옛 시골의 정취이다. 

이제 그곳은 큰 대기업의 하청을 받은 창고들이 들어서고, 집들은 단열이 잘되는 벽돌집으로 바뀌었다. 

더 더 산길을 따라 차가 올라가기 힘든 곳까지 가면 옛 정취를 가늠해 볼 수 있지만 더이상 차가 못가는 곳도 없다. 

그저 그 곳을 누리며 누볐던 소중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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