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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 Apr 29. 2020

"녹킹 온 헤븐스 도어~♬"
영화 속 니체 철학

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백미는 귀에 착 달라붙는 OST와 주인공이 결말을 맞는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모든 스토리의 흐름은 마지막 장면인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뜻이다. 단순하면서도 재밌는 스토리 라인. 강력한 메시지. 감독 토머스 얀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질문은 강렬하다.


"당신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주의: 본 게시글은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이 질문은 어찌 보면 진부한 주제일 수도 있다. 삶의 유한성에 대한 고찰은 이미 수많은 문학 작품의 주제가 아니었던가. 김만중의 고전소설 <구운몽>부터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등등. 영화에서도 찾아보면 수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구운몽>을 떠올려보자. 양소유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여덟 명의 여인과 만나 결혼하고, 인생무상을 느껴, 다시 불교로 귀의한다. 재미없다. 반면에 똑같이 '삶의 유한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노킹 온 헤븐스 도워>는 눈물 나도록 재밌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왜 <구운몽>은 재미없고 이 영화는 재미있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때문이다. <구운몽>이 던지는 메시지는 진부하다. "부귀영화, 연애 이런 거 결국에 다 부질없어." 하지만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스토리 내내 그와 반대로 말한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고 죽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YOLO 정신이다. 필자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한국의 요즘 청년들이 생각하는 YOLO 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You Only Live Once. 당신은 인생을 한 번만 산다. 이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별로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다. 인생은 한 번만 사는 건데, 그동안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고, 집을 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었다. 부모님들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이 인생의 순리라고 생각했다. "왜 꼭 그렇게 해야 해?" YOLO를 생각하는 청년들은 그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답을 니체의 철학에서 찾아보자.


니체는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 주장한다.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이라는 뜻이다. 어렵다. 이해하기 쉽게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을 들어보자. 현대적인 해석에 따르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시간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시간이 돌고 돌면서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돌고 돌면서 반복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돌고 돌면서 반복된다는 생각은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는 맞지 않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는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이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시간관을 단선론적, 혹은 일직선론적 시간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관은 기독교적 세계관, 자본주의적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니체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독교에서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흐른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는 시간은 결과적으로 미래로 흐를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인내할 것을 강조한다. "지금 참고 착하게 살면,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다." "삶은 짧고 죽음은 영원하기 때문에 짧은 삶 동안 착하게 살아야 영원히 천국에 있을 수 있다." 오늘날과 달리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이러한 교리가 절대적으로 강조됐다. 그에 따르면 현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삶은 사후 천국에서의 삶을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 2명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천국에 대해서 못 들었나? 그곳엔 별다른 얘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이 장면에서 필자는 감독이 천국의 '절대성'을 부인하고 현생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대사를 넣었다고 생각한다. "너희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 천국이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곳은 아니야. 오히려 그곳에 갔더니 사람들이 다 현생에서 봤던 아름다운 경치에서 말하고 있던걸?"이라는 말을 부드럽고 세련된 대사로 표현한 것이다.


단선론적인 시간관은 자본주의(현대사회) 세계에서도 강조된다. 현대사회는 지금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면, 나중에 부자가 돼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혹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성공 사례들을 동경한다.


하지만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시간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농경 사회에서는 시간이 돌고 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비슷하다. 농경 사회에서는 봄이 되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추수를 하는 생활이 생애 내내 반복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떠올려 보자. 그때는 지금과 같은 달력이 없었기 때문에 1년 중 하루를 24절기로 인식했다. 춘분, 하지, 추분, 동지... 계절의 흐름에 따라 농사를 지었고, 농사일에 따라 일상이 정해졌다. 


농경 생활에서의 이러한 시간관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산산조각 난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중에게 시계가 보급되기 시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철도가 깔리고 도시에 기차역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정확한 시간은 더없이 중요하게 되었다. 광장이나 기차역에 대규모의 시계탑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한국 사회는 6.25 전쟁 이후 빠르게 근대화를 겪었다. 니체적 관점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시간관을 빠르게 습득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경제 성장의 가도를 달리는 동안 열심히 일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온 국민의 꿈이 되었다. 성실한 국민성은 근대적 단선론적인 시간관과 잘 맞아떨어졌다.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저축했고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장의 동력은 멈추기 시작했다. 2010년대 들어 우리나라도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었다. 이때 즈음 '힐링'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이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열심히 자기 계발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단선론적인 시간관이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이전에는 가능했던 모든 것들이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해 청년들에게는 불가능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청년들이 YOLO를 외치는 것은 철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기 계발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사회적 결과다.


단선론적 시간관이 쓸모없어진 지금, 자기 계발이 큰 의미가 없어진 지금, 청년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지? 내가 품고 있었던 꿈은 뭐지?"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주인공들이 죽음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것처럼.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물론 현대사회에서 경제 활동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탕진잼' 수준의 지나친 YOLO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따르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산다고 한다. 인생은 돌고 돌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도 이런 말이 있다. "자기 계발에 매몰된 사람은 저도 모르게 행복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있다." 일상에 매몰될 때, 힘든 일에 지칠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과업 아닐까.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한창 바쁜 일상에 지쳐 일탈하고 싶은 마음에 한번 보는 그저 그런 영화가 아니라 일평생에 걸쳐서 마음 한편에 담아두고 있어야 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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