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하는 곳에 항상 없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사랑? 사랑은 내 안에 차고 넘치도록 많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나 오들오들 떨리는 한파가 찾아온 날이나 뙤약볕 내리쬐는 날, 공연장 앞에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면서 '이것이야말로 참사랑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돈? 돈이야 세상을 흘러 흘러 돌아가는 것이니 지금 내게 없어도 돌고 돌아 나에게 오고 있는 궤도에 있다. 그러니 있어야 하는 곳에 항상 없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하는 곳으로 오는 중이다. 왜요, 저 우는 거 아닌데요?
우정? 오해를 잘 사는 편이고 대인 관계를 어려워하지만 워낙 '세상 만사 인연대로~ 순리대로~'인 성격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들도 있고 팬 생활하면서 만난 절친도 있고, 더 바랄 게 뭐 있나.
일? 일은......호호, 이건 당연히 많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이렇게 글을 전개하니까 '있어야 하는 곳에 항상 없는 것'이 일처럼 됐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데 없는 것은 바로 이어폰이다!
음질도 안 좋고 블루투스도 지원 안 되는, 오래 써서 꼬질꼬질해진 줄이 달린 이어폰!
집에서 집중이 안 돼 동네 카페에 나왔다. 강의나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일할 생각이었는데, 당연히 가방 안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이어폰이 없다! 그러고 보니 한 일주일 전부터 이어폰을 못 본 것 같다.
도대체 이어폰은 왜 맨날 필요할 때면 없는 것일까? 크기라도 작으면 어디 틈새에 들어가서 안 보이나보다 할 텐데, 줄 길게 달려서 거추장스러운 녀석이 안 보이니까 참. 도둑이라도 들었나? 아니, 머리핀이나 머리끈처럼 이사 가려고 가구 옮길 때마다 한 무더기 등장하는 쪼깐한 것도 아니면서 왜 없어지냐고요.
그나저나 이어폰이라니. 에어팟과 버즈가 범람하는 최첨단 세상에 참 구식이다 싶은데, 나는 에어팟이나 버즈가 영 익숙하지 않다.
스마트폰을 입에 안 대고 허공에 대고 전화하는 사람을 보면 지금도 무섭고 -이어폰 줄에 달린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것도 무섭다-, 귀에 끼고 다니다가 쑥 떨어져서 사라지면 어쩌나 싶어서 걱정이다.
전자기기에 돈을 안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을 바꿀 때마다 그 시점에서 3년 정도 전의 보급형을 사고 망가지지 않는 한 3년 이상 쓰니까 굳이 보조 기기에 돈을 쓰고 싶지 않은가 보다.
무엇보다 길쭉하고 덩치 큰 이어폰도 이렇게 맨날 없어지는데 저런 조그마한 녀석들(그런데 가격은 비쌈)을 썼다가는 어떻게 될지. 아이고, 오싹해라.
아아, 그나저나 내 이어폰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