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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네농부 Jul 12. 2019

나는 굉장한 입문 단계 농부

모종 어떻게 키워야 잘했다고 소문나나

오전 10시 56분, 농장의 하늘


농장에서 하늘 보기에 좋은 위치들 중 한 곳. 오늘도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밝은 대낮에도 훤히 볼 수 있는 하얀 달.


나는 해와 달이 같은 시간, 같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해는 낮에 뜬다고 했고, 달은 밤에 뜬다고 했는데 왜 밝은 대낮에 달이

보이지?


돌이켜 보니, 어릴 적 나의 호기심은 하늘 끝을 뚫고도 남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귀로 들리는 모든 것을 자세히 알고 싶어 했던 그런 어린아이. 가끔은 선생님이 귀찮아하실까 봐 그냥 아는 척하며 넘겨 보는 의젓함(?)도 보였던 것 같다.(그때 거르지 말고 모든 것을 물어볼걸 후회할 때가 있었지. 지나면 궁금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아주 나중에서야 알고 말았다.)


더 이상 궁금한 것에 의젓해 보이지 않으리 단단히 마음먹기 시작한 때는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래 봤자 반년 조금 넘으려나. 그렇다. 나는 굉장한 입문 단계 농부.






사실, 고구마 모종을 키우기 시작하여 심고 캐기까지(물론 캐는 것은 곧 다가올 가을의 이야기) 전적으로 내 몸을 온전히 담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고구마 모종을 마음에 딱 들어맞게 키우기란 보통의 일이

아니다. 아니, 보통으로 키우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나의 마음에 딱 들어맞기란. 섬세하고 섬세하게, 정도 있고 정도 있게, 자세하고 자세하게, 완벽하고 완벽하게. 나 조차도 나 스스로에게 혀를 끌끌 차며 인고의 시간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투자해버리고 만다. 어쩔 땐 모종이 너무 많이 자라 버린 것 같고, 어쩔 땐 모종이 너무 뻗뻗하기도 한 것 같고, 그때마다 좌절은 온전히 나의 몫. 괴롭지만 나는 더 잘 해내고 싶다.



물을 주는 양을 늘릴까. 아니면 물을 더 자주 줘볼까. 일찍 줄까. 물을 주는 시간대를 바꿔볼까.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물 조절은 얼마나 해볼까. 오늘은 평년보다 온도가 더 높네. 작년 이 맘 때쯤엔 물을 이 정도 줬었는데 더 많이 줘도 괜찮을까.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안 왔네. 물은 똑같이 줘야 하나.






궁금한 것에 의젓해 보이지 않기. 충분히 고민하고 찾아보고, 혼자 해결하기 쉽지 않으면 더 이상의 시간은 지체시키지 말고 꼭 조언을 구하여 해결해보기.


왜 해가 뜬 밝은 대낮 하늘에 달도 있는 걸까. 나의 마음에 딱 들어맞는 모종이 과연 심기에 좋은 모종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단단하고 무른 정도가 정말 좋은 모종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물의 양은 어떻게 조절해서 줘야 할까.


모종을 온전하게 키웁니다.


이 한 문장에는 어마어마한 고민과 시도와 시험과 피드백이 필요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결국 같은 결. 수험생 입장에서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과 고구마 모종을 온전하게 키우는 것.


앞으로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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