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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여행자 Oct 18. 2023

로열동, 로열층, 로열라인이 정말 좋은가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15

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 앱을 켜고 보다 보면, '로열'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모든 집들과 비교했을 때 좀 더 우수한 품질일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저마다 로열동이라 한다. 로열 라인은 끝자락에 있지 않은 라인이 해당되는데, 결로 문제가 비교적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로열 층이라는 것은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중층이라고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고층은 조망권과 일조권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냉난방비가 더 많이 든다는 인식이 있고, 저층은 땅에 가까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생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생활 침해와 벌레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니까 로열층, 중층은 이 장단점의 리스크가 적은 층이라 보면 된다. 


로열 동, 로열 라인, 로열 층


로열층: 고층 아파트에서 햇빛이  들고 높지도 낮지도 아니하여 생활하기에 가장 좋은 층을 이르는 .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소위말해 한 지역의 대장아파트라 불리는 로열층 로열라인에 살면서, 나는 눈앞에 펼쳐진 아찔한 아파트 조망에 소진되어 갔다. 그 당시에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소파에 앉아 창 밖의 깨끗한 아파트 풍경을 바라보면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집에 살고 있는데도, 그리고 더 좋다는 로열 층으로 내려왔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처음 집을 구경하며 창 밖을 보았을 때는 기존에 살던 아파트에 비해 비교적 새 아파트가 보여 마음에 들었지만, 매일 집에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다른 동의 흰 벽들은 내 삶을 메마르게 했다. 유현준 교수님의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그때 내가 느꼈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알 것만 같다. 그 당시 난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없었으며. 생동하는 자연을 느낄 수 없었다. 생동하는 인간의 삶에는 생동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커튼 너머로 보이는 흰 벽이 어렴풋이 보였고, 창문을 열어두면 커튼이 펄럭이며 손짓을 하는 것 같았고 나는 왠지 모르게 커튼이 펄럭이는 곳을 따라 창 밖을 내다보곤 했다. 한때는 귀신이 손짓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창밖 풍경 가운데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이 커튼뿐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생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생동하지 않는 것. 남들이 말하는 로열층은 적어도 내겐 로열층이 아니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로열층은 중간 정도의 층을 일컫는다. 너무 저층도 고층도 아닌 딱 중간, 그러니까 평균치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까 우리는 내게 맞지 않을 수 있는 어떤 평균이라는 틀 안에 욱여넣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난한 것을 좋아하지만 적어도 삶의 공간을 고르고 선택하는 데만큼 '평균'은 지나치게 단조로운 평가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실제로 로열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내게 맞는 로열의 기준은 분명 평균이 아닌 그 어떤 다른 곳에 있음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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