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1. 나는 누구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집 밖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 그렇게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한 해의 마지막을 함께 보낸다.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존재성은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 관계들을 우리가 정말로 원했던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될 때가 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 속에서 ‘비본래적 자기’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이데거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본래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죽음이라는 가장 고유하고 피할 수 없는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온 세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학위, 전공, 관계 등이 자신을 규정하고, 그 안에서 인정을 받기도 한다. 해당 전공이 아니면 책을 내기도, 그림을 전시하기도 어렵다. 행위의 과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 노골적이다. 공공기관에서조차 연차를 그리 따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사기업으로만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리급 몇 년 차, 과장급 몇 년 차, 입사 몇 년 차처럼 경력 사항의 연차를 줄 세우듯 세세하게 따진다.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라는 곳에서조차 이처럼 비전문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몇 년 차에는 승진을 해야 하고, 이직 시 그 연차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은, 조직이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얼마나 협소했는지를 반증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게 짧지 않다. 10대, 20대에 받았던 성적과 전공만으로는 내면을 채우기에도, 긴 삶을 살아가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설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40대, 50대, 60대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거나 예술 활동을 시작하는 일이 그리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다. 과거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어 한글을 익힌다는 이야기 정도가 가장 혁신적인 태도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삶의 조건이 나아질수록, 우리 삶의 가치 또한 변화하는 듯하다. 예전에는 직함과 지위가 가져다주는 인정과 위신 같은 외부의 기준을 향해 목표를 세웠다면, 이제는 점점 자신의 내면과 ‘나답게 사는 삶’을 향해 목표를 세운다. 이제 회사는 대출을 받기 위해 다니는 곳일 뿐, 한때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그런 사회적 가치는 거의 희석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한때는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회사 안에서 나름의 가치를 찾으려면 임원이 되는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칫 위험하더라도 회사 밖에서의 삶을 계획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채우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조차 채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육감에 가까운 충동에 의존해 자신을 대신 채운다. 끝없이 먹고, 마시고, 편향된 쾌락주의에 빠져, 자기 안의 빈 공간을 음식이나 각종 쾌락 같은 것으로 대신 채우려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 하이데거는 ‘나’라는 존재를 비본래적 자기와 본래적 자기로 구분했다. 우리는 사물, 타인, 의미의 연관 속에서 존재하며, 시간성 속에서 자기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하이데거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하이데거에게 우리는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으며, 존재 자체가 사유의 전제 조건이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인간만이 던질 수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만이 깊은 존재론적 성찰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날카로운 통찰은 데카르트의 존재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본연의 모습, 본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가장 진솔한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경력과 전공을 먼저 묻고,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무지한 관계보다는, 진정한 나의 모습과 내가 맺어온 관계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일이 더 필요하다.
매년 자신이 했던 일을 되짚어 보고, 그 연속성을 따라 방향키를 잡는 것이 일반적인 연말의 순례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타인, 전공, 회사 등 외부의 시간성과 연관성에 기대기보다는, 본래의 자신을 위한 열린 결말을 한 번 세워보는 것이다. 한겨울, 할 일 없을 때 해보는 허튼짓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과거에 되고 싶었고, 하고 싶었던 것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래도 나와의 대화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았다면, 그 길을 선택해도 상관없다. 매년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IT 회사에서 잡일을 해왔더라도, 전공이 과학기술정책이지만 실제로는 미술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 왔더라도, 앞으로는 작곡을 하고 유튜버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그것 또한 괜찮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시대는 급변하고, 그만큼 우리가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자신과의 대화에서 충분한 사유 끝에 내린 결론이라면, 다른 길을 선택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색하고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해 앞으로의 활동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많은 조사와 판단 끝에 결론을 내리겠지만, 지나친 사색은 때로 또 다른 모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칸트 철학에서 말하는 "자기 요구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는 전체에 관한 모순"은 이러한 상황을 잘 드러내 주는 개념이다. 이성은 자신에 대해 자율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요구한다. 칸트에게서 이성의 자기 요구는 그 자체로 절대적이나, 그 요구가 온전히 완결되는 전체(도덕 법칙, 자연, 세계)의 조건은 결국 단념하지 않을 수 없기에, 자기와 전체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모순적 긴장이 생긴다.
그래서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했다고 해도, 끝내 사회나 경력 같은 외부의 ‘합리적’ 조건에 순응하는 선택만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칸트가 말한 의미에서 하나의 ‘모순’ 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 모순은 단순한 기분 문제나 심리적 갈등이 아니라, 스스로 내세운 이성의 요구와 실제 선택 사이에서 생겨나는 논리적 긴장에 가깝다. 진정한 자기 요구와 외부 조건 사이의 긴장을 자각하고, 그 균형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끝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태만하게 다루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칸트가 말한 ‘태만한 이성’은 이성이 본래의 역할과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고, 전통·권위·경험에 무비판적으로 기대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성은 스스로 한계를 자각하면서도 비판적으로 작동해야 하지만, 이런 노력을 방기하고 자기 역할을 게을리하는 상태, 바로 그 얼굴이 태만한 이성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한겨울, 삶이 얼마나 일관적이었는지와 상관없이 지금의 방향성을 한 번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통념에만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이성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본래적 자기를 찾되, 그 과정에서 충분히 사유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이번 연말에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성찰일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본래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만은 않지만, 진정한 자신을 다시 묻고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강력한 사유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본래적 자기를 향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죽음(Death) 카드는 메이저 아르카나 13번 카드로,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한 단계의 끝, 불가피한 변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전환을 상징한다. 이 카드는 종료를 알리는 동시에, 이미 수명을 다한 것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준비를 요구하며, 피할 수 없는 변화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지 우리에게 끝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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