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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Apr 27. 2020

서체에 신을 담다

이슬람 캘리그라피에 대하여


* 이 글은 2019년 1월, 친구들과 만들었던 예술 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작년 여름, 나는 크레이그 톰슨이라는 그래픽 노블 작가에게 빠져있었다. 그의 작품을 몇 권 읽고 나서 인터넷으로 그에 대해 검색해보다 우연히 그가 이슬람 문화를 모티브로 삼은 신간을 냈음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양장본인 데다 아름다운 이슬람풍의 기하학적 패턴으로 뒤덮인 표지는 내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고 난 바로 <하비비>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여기서 그 책의 자세한 내용에 관해 이야기하진 않겠다. (오리엔탈리즘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만큼 장점도 충분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길!) 내가 그 책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부분은 스토리가 아닌 작화의 측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곳곳에서 작가는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아랍 문자를 활용한다. 한 장면에서는 두 주인공이 서로를 끌어안고 빗속에 서 있는데, 톰슨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비에 대한 유명한 고전 시의 아랍어 시구로 표현했다. 정말 낭만적인 연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은 책의 맨 마지막 부분이었는데, 작가는 ‘나의 사랑’이라는 아랍 문자 ‘하비비’를 계속 이어 써서 일렁이는 바다 물결을 표현했다. 그 외에도 책 안에선 구석구석에서 아랍 문자 캘리그래피와 그를 활용한 그림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때는 문자 캘리그래피 자체보다는 그를 활용한 방식에 감명을 받았었다.


그 책이 다시 생각난 것은 대학의 1학기 종교학 수업에서였다. 교수님은 이슬람교의 대략적인 특징에 관해 설명하셨는데, 무슬림들은 쿠란 그 자체를 신성으로 여기며 그것을 읽고 만지고 필사하는 행위까지 모두 종교적으로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이슬람교에서는 신상, 종교화에서 인격신의 모습을 그리는 등 신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과 다른 독특한 종교예술 형태를 가진다고도 했다. 그 설명을 듣고 나서 <하비비>에 쓰인 아랍 문자들이 그저 장식적인 의미가 아니라 다른 뜻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스밀라




            

비스밀라




            

비스밀라




비스밀라(Bismillah). 쿠란의 가장 첫 구절이자 무슬림들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자주 이야기하는 이 구절은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위의 세 그림은 놀랍게도 모두 비스밀라를 나타낸 캘리그래피이다. 굉장히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신의 말씀을 담은 이슬람 경전 쿠란은 신의 계시를 받은 언어라고 생각되는 아랍어로만 쓰일 수 있었고 반드시 필사로만 복제본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특성 덕에 이슬람교가 전파된 지역에서 모두 캘리그래피가 융성했다고 한다. 방금 우리가 본 비스밀라는 아랍 문자로 이루어진 아랍 캘리그래피이지만 그 외에도 페르시아의 캘리그래피, 오토만 제국에서 이루어진 캘리그래피도 각각의 특성을 갖고 발전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앞에서는 우상숭배에 대한 배격으로 캘리그래피 등 종교예술이 발달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것은 펜이다’라는 계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슬람 문화권에서 글 쓰는 것과 텍스트를 중시했던 경향 또한 우상숭배 금지만큼 캘리그래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초기에 등장한 딱딱한 직각의 서체를 쿠파(kufic) 체라고 한다. 문자의 모양 외에는 정립된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각의 스타일로 글씨를 썼다. 그러다 10세기에 들어와서 나스크(Naskh)라고 하는 필기체 스타일이 등장했고, 이 서체는 곧 쿠란과 공식 문서, 사적인 서신 등에서 모두 널리 이용되었다. 현대 아랍 서체 형태의 모체가 바로 나스크이다. 10세기와 11세기에 바그다드에서는 전문 필사가들이 등장하면서 책을 필사하고 장식하는 도서관 겸 공방인 ‘키탑하나’가 설립되었는데, 이븐 무클라 등의 몇몇 필사가들은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캘리그래피의 규칙과 서체를 정리했다. (글씨 길이의 비례에 대한 규칙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의 분류에 따르면 나스크체는 다시 술루스(Thuluth- 현대에도 건축물과 책 표지에 빈번하게 사용됨), 리카(Riq’ah), 무하카크(Muhaqqaq-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서체로 알려짐)로 나뉜다.            




유명한 서체 스타일은 아랍 지역 밖에서도 등장했다. 나스탈릭(Nasta’liq) 서체는 14-15세기에 페르시아 문화권인 이란에서 등장했다. 아랍 문자로 된 텍스트를 표현하는 데도 쓰였지만, 그보다도 터키어, 페르시아어, 우르두 등의 다른 문자로 된 시 등의 글을 쓰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위의 그림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생겨난 디와니(Diwani) 서체의 예시인데, 한 문장을 배 모양으로 만들어서 표현했다. 디와니 서체는 이렇듯 새나 동물, 사물 등 특정한 모양을 구현하기도 하는 굉장히 장식적인 스타일이다. 디와니 서체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유명한 것은 ‘투그라(Tugra)’인데, 이는 술탄의 인장이다. 술탄들은 즉위할 때마다 자신들의 개인적인 투그라            

술탄의 투그라



를 골랐고, 재위 기간 내내 공식 문서나 도장, 여러 가지 장소에 투그라가 사용되었다. 아직도 디와니는 중동 왕실에서 교환하는 공식 서신이나 문서에 자주 장식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노란 그림은 투그라의 한 예시.) 마지막으로 시니(Sini) 서체는 중국에서 발전한 캘리그래피이다. 중국에서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은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인데, 이처럼 중국 내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이슬람교가 융성했고 아랍 문자를 사용한 캘리그래피가 생겨났다고 한다.  


보통 붓으로 이루어지는 캘리그래피와 다르게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갈대나 대나무를 잘라 만든 ‘깔람’이라고 하는 딱딱한 펜을 사용한다. 이 깔람을 잘 깎는 기술도 훌륭한 캘리그라퍼의 자질 중 하나였다고 한다. 처음엔 종이 위에 쓰이던 캘리그래피는 점차 공예품, 카페트, 건축물 등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스크나 마드라사와 같은 종교적인 건축물에는 표면에 쿠란의 구절을 주 내용으로 하는 캘리그래피가 많이 새겨진다고 한다. 캘리그래피는 무슬림들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등장했던 이 아름다운 서체들은 이제 그 자체의 예술적인 가치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예술의 극치에 도달할 때, 이 작품들은 또 어떤 의미에서 신에게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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