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역사는 국민이 이루어 간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주된 대상으로 삼지만 '역사의식'이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록과 평가, 예측이다. 歷事라 쓰지 않고 歷史라 하는 것은 事實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사실에 바탕한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짐승도 학습이 있지만 역사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역사라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학습만 있고, 역사의식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의식이 있는 인간집단은 발전이 빨랐고, 그것이 모자란 집단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역사란 그 의식을 기록한 것이고, 역사의식이란 인류발전을 이루는 지혜요, 수준이다. 지금 우리는 인간적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는지, 아니면 동물적 학습에만 몰두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의식도 거시적(巨視的)이고, 통시적(通時的)이고, 중립적일수록 발전적이다. 역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시적인 성과나 편의, 일부의 이익에 눈이 어두우면 역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역사는 사회에서 이루어지므로 공익적(公益的)이어야 하고,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중립적이어야 한다. 어느 소수집단이나, 한 시대, 한 이념에 편중되어서는 공익적이고, 중립적이 되지 못한다. 현대는 민주주의 사회이므로 국민의 역사의식이 시대를 주도해야 한다. 역사를 통치자에게 방임하거나 국민이 건강한 역사의식을 갖추지 못하면 국민은 불행해지고, 그 역사는 퇴행한다는 사실을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
민주주의 정부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세운 이승만 정권은 태생적으로 민족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저버린 것이다. 그가 명분으로 내세운 민주주의도, 자유도 이루지 못했으므로 역사를 정체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을 응징하기는커녕 이들에게 국정을 맡기고, 그들을 시켜 나라를 위해서 신명을 바친 독립애국지사들을 핍박한 행위는 민족의 정기와 역사의 정의를 말살한 반역이었다. 미국의 막대한 원조에도 불구하고 북한만도 못한 세계 최빈국을 만든 것도 씻을 수 없는 역사의 퇴행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렇게 명백한데도 그를 ‘건국국부’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그의 기념관을 거창하게 세우자는 현 정부는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짓이다. 집권 2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직 역사적 평가가 성급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현 정권이 외치던 상식과 공정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통치자가 국민화합은커녕 국민을 갈라치고, 대립된 좌경세력과 중도적 국민을 적으로 만들고, 소수가 다수를 지배한다면 분명한 反민주주의이다. 현 정부의 편향적인 외교는 국익을 심각하게 해치고, 불량북한을 자극하는 짓은 전쟁을 촉발하고, 민족의 화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만약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정말 전쟁을 도발한다면 역사파괴의 전범이다. 외세에 의존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 해방의 역사가 시퍼렇게 입증하고 있는데도 선제타격을 호언하면서도 사달이 벌어질 때마다 미국, 일본에 의존하는 호가호위(狐假虎威)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설사 자주국방이더라도 우리의 터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이겨도 지는 것이고, 져도 지는 것이다. 더구나 국제전이나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다. 정부가 이런 형편이라면 국민이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
통치자의 역사의식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국민의 역사의식은 더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통치자를 선출하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 국민은 건강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거시적, 통시적, 중립적인 역사의식을 바로 세워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역사교육이고, 윤리도덕 교육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신주의, 향락주의, 진영논리, 지역감정에 경도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런 사회에서 건강한 역사의식과 윤리가 형성될 수 없다. 나만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면 우리는 과연 역사의식이 있는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혐오, 정치무관심은 나약한 이기주의요, 허무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발등을 찍는 자학행위란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신주의를 민주주의와 혼동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다수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므로 오히려 이들과 상치된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가 경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명분이 될 수 없다. 그리고 70년도 넘은 지금 아직도 6.25의 트라우마가 우리의 역사를 그르치고 있어 안타깝다. 북에서 공산당한테 재산과 고향을 빼앗겼다고 해서, 6.25때 공산당한테 재산과 가족을 잃었다고 해서 무조건 반공우파여야 한다는 생각은 이해될 수는 있지만 성숙한 역사의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흙수저라 해서 가진 자와 기득권에 대한 반감으로 좌익을 고수한다든지, 친일파 후손이거나 일본유학파라 친일, 일제 피해자 집안이라 해서 무조건 반일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진보를 빨갱이로 매도하고,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라고 해서 가진 자를 증오하는 것은 小我的(소아적) 가치관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 해서 보수여야 하고, 진보라고 해서 그의 업적까지 부정한다면 파당적 감정이지 이념도 아니다. 세대 간 갈등이나 지역감정에 젖어서 서로 반목하는 것은 치졸한 편 가르기이다. 개인의 이해타산에 의해서 역사의식이 무시된다면 타락한 사회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보다 가치로운 역사의식이 중요하다. 국민이 그럴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이 있다면 저질스러운 정치인들이 발을 들여놓을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정치인들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수준에 달려있음을 잊지 말고, 부끄러운 국민이 되지 않도록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