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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pr 12. 2023

5학년 때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물어보는 삶의 방향과 어른의 역할 

 

 잠시 한국에 다녀왔다. 입국한 바로 그날 저녁, 매일 다정한 안부와 따뜻한 문장을 나누던 시 필사 모임 멤버들을 성수동에서 만났다. 네 시간 동안 숨 쉴 틈 없이 깔깔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모임이 끝나갈 무렵 같은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차와 디저트를 나누고 있던 여덟 명의 멤버들에게 물었다. "초등학교 5학년 혹은 그 나이 언저리에,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했고, 무엇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나요?" 마흔을 앞둔, 혹은 마흔을 넘긴 우리들은 그때 '인생 제2막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혹은 회사원, 예술가, 작가, 큐레이터로 살고 있는 그들은 기억을 더듬어 열두 살의 '과거의 나'를 테이블로 소환했다. 


"그맘때 제 꿈은요..." 
 

 기억을 더듬어 약 30여 년 전의 나를 소환해 본다. 그 시절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있던 나의 이야기를 듣는 건 실로 경이롭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맘때 꿈 이야기, 누구나 하나씩, 책 한 권까지는 힘들어도 한 챕터는 금세 완성할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피아니스트, 무용수, 화가, 플루티스트, 작가, 심지어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과거의 나. 눈동자를 옆으로 데굴데굴 굴려가며(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 왼쪽 옆으로 시선을 돌리는 걸 아시나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는 모두의 눈빛에, 반짝거림이 가득해서 좋았다. 양 볼이 발그레지다 못해 귀까지 빨개지다가도 입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그 꿈을, 부끄럽지만 용기 내어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 단어를 소리 내어 입 밖으로 이야기하는 순간이 좋았다. 그렇게 모두의 이야기를 한 차례씩 들으며 과거로부터 이어진 우리를 성수동의 어느 카페로 소환했다. 


 "사람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일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거든요. 그 일이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렇죠."
(...) 미래의 방향을 찾기 위해 나는 거꾸로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모습을 되짚어 봤다. 답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있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 마음이나 성향에 맞는 선택을 내린다. 그러나 생존의 기초를 만드는 인생 1막에서는 종종 이 원칙이 무너진다. 취업, 사회생활, 결혼 등 사회적,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뜻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채지희 저, <버려진 시간의 힘> 중에서 


 

 왜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까? 그맘때에는 진로'고민'이라기보다는 진로'선택'을 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내가 푹 빠지는 일이 생기면 그것을 장래희망의 리스트에 맨 위로 올린다. 사회적 잣대와 어른들의 기대라는 변수를 개입하지 않은 채. 굳이 5학년이라는 구체적인 나이를 제시한 이유는 그보다 더 어릴 때는 외형적으로 멋있어 보이는 직업에 매료되기 때문에 나의 성향이나 성격이 반영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꿈인 경우도 많다. 소방차를 타는 게 멋있어 보여서 소방관 아저씨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고, 제복을 입고 도둑을 때려(?) 잡는 게 멋져 보여서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다. 텔레비전에 나와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 가수라든지,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라든지 하는 예쁘고 아름답고 반짝반짝 빛나는 직업에 매료되기도 한다. 그러나 5학년쯤 되면,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실제로는 목숨을 내놓을 만큼의 용기와 헌신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아이돌가수나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땀으로 범벅이 될 만큼 연습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직업적 재능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갈고닦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슬슬 깨달으면서 '내가 오랜 시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거나, 투자할 결심을 했거나, 혹은 남들보다는 재능이 있는 것 같은 미묘한 자신감이 결심의 근거가 된다. 피아노 학원에 오래 다녀서 이미 체르니 40번을 칠 줄 아는 아이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기도 하고,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제법 많이 들으며 교내외의 미술 대회에서 상장 좀 받아본 아이가 화가를 꿈꾸기도 하는 나이. 내 관심사나 마음이나 성향이나 재능이 이끌어주는 대로, 그렇게 우리는 나만의 고유한 꿈을 꾼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면, 혹은 그보다 더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장래희망의 리스트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수정된다. 예체능 계열의 꿈을 꾸던 아이들은 소위 '예중’이나 ‘운동부’와 같은 특성화 상급학교의 입시를 앞두고 꿈의 방향을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의무교육으로 요구되는 학업 외에 개인적인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분야이므로 그렇게까지 과한 금전적인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부모님의 선언이 있기도 하고, 노력했으나 입시운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다른 경우의 수와 가능성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에 올인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이 꿈을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맘때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재능과 성공가능성을 냉철하게 파악하려 애쓰며 꿈의 목록을 수정한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성공 가능성이 있거나, 성공하기까지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한 진로의 경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뚝심 있게 그 꿈을 고집하기 어려워진다. 사회의 잣대가, 현실적인 제약이, 나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나 금전적인 고민이 미래에 대한 상상에 브레이크를 건다. 어떤 사람들은 꿈의 결을 유지하면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한다. 소설가가 되기를 꿈꿨던 아이가 비슷하게 글을 쓰는 직업이지만 미래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하거나, 만화가를 꿈꾸던 아이가 디자이너를 하겠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안심한다. 


 그래서 마흔을 앞두고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 꿈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모습 그대로 자라나 자아실현에 성공한 소수의 케이스들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 꿈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5학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그 질문이 마음에 많은 여운을 남겼는지 성수동 저녁모임이 끝난 이후에도 몇몇 사람들이 그날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생각과 마음을 덧붙여 보내주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딱 그맘때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인지라 아이의 꿈에 대한 고민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우리는 내 꿈에 대해 고민할 에너지를 아끼고 나누며 내가 아이의 꿈에 어떤 간섭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어릴 적 꿈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누며 ‘평생의 아쉬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했기에, 혹시나 비슷한 감정을 아이에게 되물려주는 것은 아닐지 염려했다. “엄마, 나 사실 그때 엄청 ㅇㅇ이 되고 싶었어.”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성인이 된 자녀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과연 아이의 고백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성인이 된 우리는 마음 한편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이나 배경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부모가 내게 했던 대사를 그대로 내 아이에게 반복하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을 새삼스레 깨닫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것이고, 그것을 직업적 재능의 영역으로 확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는 아이들은 미처 생각할 수 없었던 고려사항들이 있는 법이다. 부모 눈에는 보이는 험한 가시밭길을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덥석 걸어가도 된다고 등을 떠밀 수 없다. 그런 고민 없이 뭐든지 오케이만 외치면 아이의 모든 재능과 관심에 지지적이었던 부모조차 “왜 그때 날 말리지 않았어요.”라는 불만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부모로서는 억울할 뿐이다. 


 다만 내가 부모와의 의견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었을 때 아쉽고 섭섭했던 기억을 바탕 삼아, 내 아이에게는 조금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통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엄마들이 다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우리의 대화는 “결국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서, 자녀를 서포트하는 부모로서의 모든 역할은 ‘부모자녀 간의 관계’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결론이 아직 ‘잠정적인’ 이유는 우리 모두 현재진행형의 엄마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모자녀 간의 좋은 관계가, 믿음이, 지지가 아이를 좋은 미래와 좋은 결정으로 이끌 것이라는 신념을 바탕 삼아 현재를 살고, 그러다가 또 속앓이도 하고, 아이와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 꼬옥 안아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뚜벅뚜벅 미래로 걸어갈 것이다. 그 끝에 엄마들의 숫자만큼, 아이들의 숫자만큼 많은 결론이 남을 것이고, 그것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그저 ‘최선’이었을 것이다.  


 함께 했던 필사모임 멤버분이 대화의 마무리에 나눠주신 문장을 여기에 옮겨 본다. 엄마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정답’은 없겠지만, ‘힌트’는 곳곳에 숨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초등 5학년’의 꿈을 간직한 나도, 그리고 초등 5학년을 지나오는 내 아이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꿈을 어떤 형태로든지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판단이 부모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가 해야 하는 건 부정적인 결과가 있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아닙니다. 혹 아이의 선택이 좌절로 끝나더라도 ‘네 뒤에 부모가 있다’는 사실만 아이 마음속에 확실히 심어주면 됩니다. 이건 자녀가 사춘기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크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훌륭한 어른으로 잘 클 거예요.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애들은 잘할 거고, 잘 살 테니 지지해 주고 웃어주고 믿어주세요. 

박웅현, <책과 삶에 관한 짧은 문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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