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의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brey May 25. 2023

내가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이유

 어제는 날씨가 좋아 일부러 밖을 나섰다. 딱히 서점에 갈 생각은 없었는데, 코엑스를 지나가다가 '유난한 도전'이라는 책이 눈에 보였다. 이전에 읽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못 읽었던 책이어서 바로 집어 들고 땅바닥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나는 평범한 회사는 절대 못 다니겠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창업을 시작했던 난, 내가 만든 서비스로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소름 끼치게 좋았다. 비록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고객들뿐이었지만, 그들이 줬던 칭찬은 창업한다시고 겪은 마음고생을 싹 사라지게 했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을 내가 만들어서 한다는 사실이 좋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내가 만든 프로덕트로 고객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고객들의 표정을 세밀하게 쪼개서 관찰하며 그들의 입에서 칭찬이 나올 땐 내가 맞는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힘든 일도 있긴 했다. 내가 아이템을 평가하기 위해 100개가 조금 넘는 교회들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을 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대답이라도 해준 곳에 설명을 신나게 하고 있는데, 반응이 없어서 보니 이미 전화가 끊겨 있을 때의 허탈함도 잊을 수가 없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네트워킹에 자주 나가야 한다는 것과 내 아이템을 어디서든지 어필하고 누구에게나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은 소심한 나에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불편한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티 내고, 나서서 말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순간순간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스타트업 씬에 있는 모두가 나 빼고 이 활기차고 격양된 분위기에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 나만 이런 분위기에 참 안 맞는 사람 같아서 풀이 죽기도 했다. 


 그렇게 한 8개월 창업을 해보다가 팀이 깨지면서 자연스럽게 날 불러주는 회사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날 찾는 회사들이 많았다. 성과도 없이 고작 창업씬에만 있었을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한 번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하고 불러주는 곳이 많다는 사실이, 창업하며 낮아졌던 자존감 회복에 많은 도움을 줬었다. 사실 그땐 피그마도 제대로 못 다뤄서 삐걱대는 왕초보 디자이너였는데, 대표님들이 날 좋게 봐주신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많은 대표님을 만나봤지만, 항상 빛나는 대표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창업하고 싶은 사람을 팀원으로 두고 싶어요"라고. '창업하고 싶은 사람'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더 구체적으로 대표님이 바라는 인재상을 물어볼 겸, 난 그때마다 "창업하고 싶은 사람을 팀원으로 두고 싶으신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창업하고 싶은 사람의 태도는 일반 회사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뭐든지 나서서 일하고, 배우는 것에 집착하고, 성장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그런 사람들, 자기 회사를 만들려는 생각이 있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나도 창업씬에 있었던 몇 개월 동안 소심했던 내 성격이 꽤 진취적으로 변한 걸 느꼈으니 맞는 말인 것 같다.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것 같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여도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으면 먼저 커피챗을 요청하고, 정말 잘하는 팀 같으면 대표님을 만나 뵙고 싶어 따로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회사에서도 주시는 일 외에도 내가 할 일을 따로 만들기도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가감 없이 물어보러 다녀서 '물음표 살인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득이 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조금의 성장 욕구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얻을 것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대기업과는 다르게 스타트업에서는 원하는 만큼 나의 일의 범위를 넓힐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한 직군에만 국한되지 않게 여러 방면에서 경험치를 더 빨리 쌓을 수 있다. 속한 팀에 상관없이 회사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서 자유롭다.

특히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라면, 마치 나의 프로덕트를 직접 만드는 것처럼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어볼 수도 있고, 프로덕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성장을 가감 없이 지켜볼 수도 있다. 팀원들이 다 같이 모여 몰입하고 고객 반응이 나왔을 땐,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스타트업의 큰 매력이다.


 많은 장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트업의 장점은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큰 비전을 가지고 모이는 사람들에게서는 배울 점이 참 많다. 플레이를 잘하고 있는 팀들의 특징은 어마어마한 작업량에도 불구하고 워라벨을 따지지 않고 회사의 성장을 곧 자신의 성장으로 생각하며 몰입한다는 것이다. 그런 팀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시너지가 난다. 일이 많아도 축 늘어지는 소리는 들을 수 없고 대체로 긍정적이고 활기차다. 회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모두가 알고 있고 서로의 성장을 기뻐한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언제 집에 갈지 시계만 보고 있는 지루한 근무 시간이 아닌, 내가 성장하는 것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회사가 이루는 성장에 가슴이 뛰고, 더 나아가 이 세상에 훨씬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의미있는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 스타트업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