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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천식 있는 남자랑 산다는 건



칫솔로 손톱 사이사이 때를 다 벗긴다고요?!!


연애할 때도 남편의 손은 언제나 마르고 거칠었다. 


깔끔한 성격인 건 알았지만.. 

내 손을 잡을 때 자신의 손에 있는 세균과 곰팡이, 바이러스 등 미생물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며, 손톱 사이까지 모두 칫솔로 꼼꼼하게 씻어냈기 때문이다. ^^; 


더불어 아토피가 있어 아무 로션이나 바르지도 못한다. 


아토피 전용 로션도 남편은 가렵고 따갑다며 직접 만들어서 쓰는데.. 그렇다고 그걸 매번 바르는 번거로움도 싫어했으니. 허허 참. 


밥 먹던 제자들이 신나서 떠들다가 침이라도 튀기면 오바이트가 나올 것 같아서 같이 식사도 하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식당일을 마치고 집에 귀가하신 후에도 걸레부터 손에 잡는 습관이 든 것은 박 씨 집안 종손인 남편의 아토피와 천식 증세로 먼지가 많으면 내내 기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과 함께 산다는 건 일반적이지 않았다. 


나 역시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 베개 커버와 한번 입은 잠옷을 세탁기에 넣고, 

- 물걸레로 거실바닥을 닦고, 

- 화장실 변기를 닦으며 하루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런 남편이 봉사활동 할 때만큼은 180 달라진다. 

 

모두들 냄새나서 피하고, 

침 흘리는 게 더럽고,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둔하다며 뒤에서 사람들이 피하고 욕하는..


소위 사회적 약자분들을 향해 따뜻하게 먼저 다가가 주니 말이다. 

- 아무 거리낌 없이 안아주고, 

- 콧물과 침을 맨 손으로 손수 닦아주고, 

- 밥도 먹여주고, 등도 토닥여준다.  


자식에게 무시받고 괄시당하는 독거노인분들을 위한 무료 급식 봉사와 공연봉사를 위해 공연장 공사를 진행할 땐 많은 먼지를 먹으면서도 앞장서서 일들을 진행했다. 


덕분에 우리 부부에게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건 없었다. 송년회나 새해맞이 축하도 봉사활동에 반납했으니. 하하 



함께 봉사하는 분들은 남편이 아토피에 천식이 있는 줄도 모른다. 

심지어 25년 지기 친구도 모른다.. 


자신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할 거라며

먹으면 온 몸을 긁는 과자를 친구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20년 동안 같이 먹어줬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친구가 불편하지 않게 긁고 싶어도 참았다고 한다. 

우리 남편은 이런 사람이다..



진돗개는 자신의 쉬는 공간엔 절대 배설을 하지 않는다. 

그토록 깔끔하고 예민하며, 사냥할 땐 주인을 지키기 위해 곰이나 멧돼지와도 맞서 싸우는 용기와 끈기가 있다. 


우리 남편도 그렇다. 


- 개처럼 예민하고, 

- 개처럼 착하고, 

- 개처럼 용기와 끈기가 있는 사람. 


그래서 나는 남편이 참 좋다. 


혼자 깔끔 떠느라 남에게 피해 주는 건 생각 못하는 안하무인이 아니라서 좋다. 


마음의 상처가 많고 저능아라 불리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그 진득한 콧물과 더러운 침도 맨 손으로 손수 닦아주는 그 마음이 참 좋다. 


다시 태어나도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을 정도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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