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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홍 Nov 08. 2024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형벌처럼 느껴졌던

거칠고 거친 과거를 돌려보냈다.

어떤 분노가

어떤 좌절이

어떤 패배가

어떤 두려움이

노곤한 낮잠뒤에 오는 개운함 같이

스르르 풀렸다.

이제 일어선다.



나에게 온갖 형태로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주고 떠났던 사람들을 향해 마음 깊은 곳에 감춰뒀던 복수의 감정들을 멈추기로 했다.

그들 앞에 보란 듯이 서 보이겠다는 날 선 감정들이 나를 과거의 그때에 머물게 했다.

하나하나 그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두 눈 질끈 감고 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평생 풀려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을, 그때를, 그 시간들을 용서하고 떠나보내는 것이 내가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길인 걸 알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도 그들로부터, 그때의 일들로부터, 그 시간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임을 알았다.


이런 사람들을 만났고, 이런 일들이 있었고, 이런 삶이 나에게 있었다고 한 페이지로 남겨두면 되는 것이었다.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너덜너덜해진 내 삶은 잘 꿰매고 덧나지 않게 호호 불어가며 아물게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들을 파이조각처럼 뚝 떼어서 물끄러미 바라봤다.

처음에는 뚝 떼어내는 게 힘들어서 조그마한 인형들을 앞에 놓고 바라봐 주었다. 며칠은 많이 울었다. 인형을 가슴에 끌어안고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울었다.

그것이 나의 감정이었다. 감정들이 호소하고 있었다. 외면하지 않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오히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꼈다.

'응, 그랬어?'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속으로 이 정도의 대답만 해주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그 인형들이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같이 웃었다. 퉁퉁 부은 못생긴 얼굴을 하고 인형과 마주 보며 웃었다.


슬픈 감정에는 '왜?'라고 저항하지 말라고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이 기억이 났다.

동정과 연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받아들이면 바로 떠나간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인형을 앞에 놓고 분노가 서려있는 감정과 마주해 보니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음을 알게 됐다. 하루이틀에 해결되는 일은 아니지만 효과는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나를 과거에 머물게 했던 감정들에서  조금씩 풀려나면서 예전의 호기심 많고 긍정적인 나의 세상을 찾아가고 있다. 그냥 걸어서 나가면 되는데 잔뜩 겁먹고 숨어있었다.

풀이 죽어있던 나를 깨우고 접혀있던 날개를 다시 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쳤다.

"어쩔 건데! 내 인생이야!"


긴 호흡을 하고 다시 기지개를 켜야겠다.

파란 하늘이 눈 부시게 다가온다.

'살아줘서 감사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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