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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Lee Apr 26. 2020

삼세 끝판왕들의 공통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도올 지용옥 지음

 

*삼세는 과거-현재-미래의 세상을 말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세상의 끝판왕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보자.



도올 김용옥

2016년 한국갤럽이

우리나라에서 민중의 사랑을 가장 넓게

받고 있는 철학자로 뽑았다.

고려대학 생물학과, 한국신학대학,

고려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였고,

국립대만대학에서 석사,

일본 동경대학에서 석사,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분명 260g(실중량 391g)같이 느껴졌는데
다 읽고 보니 그 감동의 무게가 260t 같더라!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 디즈니만화 욕심쟁이 오리 아저씨 '스크루지 맥덕'이 금고의 금화 수영장에서 수영하듯 내 머릿속에 도파민이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전문용어로 오르가즘? 시상하부-뇌하수체에서 팡팡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이 같은 느낌이라 볼 수 있겠다.


주옥같은  스토리텔링과 역사적 지식들이 많이 나오지만, 대중서 답게 김용옥 교수님 본인의 통찰력으로 나 같은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쉽게 설명해준 3가지 도표를 통해 내 감동(매우 주관적인)을 전하려 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반야심경의 깊은 깨달음이 아닌 그림 보고 좋아하는 내 잡념의 퍼레이드 되겠다.


1. 삶의 업보를 내려놓고 평안에 이르기

방하착 : 내려놓았다

진리가 무엇인가?

힌두교 불교 유대교 초대 기독교 이슬람교 가톨릭 동방정교회 영국 성공회 개신교

모두 자신들의 교리에 근거해서 진리를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비슷한 소리를 한다.

우리는 왜 종교를 가지는가?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종교는 결국 개인의 성공과 마음의 평안을 주는 종교이다. 불교에서 진리로 여기는 것이나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진리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라 하겠다.


조선의 고승 경허는 "내려놓음"을 설파한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업보(고뇌)를 만나는데, 강(특정 시기)을 건너면 내려놓고 나아가야 하지만 끝까지 붙잡고 혼자 끙끙대기를 자처한다.


로마시대에 살던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둥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는 등의 소리를 하는데. 기독교의 교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제자가 되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내려놓음"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불교나 기독교에선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말인가?


신박사TV(신영준 공학 박사)에서 인생의 현재를 기울기로 정의 내리는데,

현재를 축으로 과거와 미래를 시소로 본다면;

1. 과거의 실수와 고통을 반성(교훈)에 놓으면 미래는 희망과 기대가 있고

2. 과거의 실수와 고통을 후회(미련)에 놓으면 미래는 불안과 걱정이 있다.


지안. 즉, 삶의 평안에 이르는 길은 내 과거와 욕구를 내려놓음으로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우리 삶이 다 행복하자고 이러는 거 아닌가? 그럼 내려놓으시라!



린든 존슨 "과거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순 없지만 과거 속에서 살 수는 없다"

이것은 그의 보수 정신에 대한 존경과 진보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인데, 미국의 시민권을 만들어 만인이 평등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과거의 영광과 이익에 묶여 사는 보수들에게 내려놓으라고 하는 말인 듯싶다.

그냥 존슨이 좋아서 억지로 적어봄.




2. 세상만사 고통의 근원 "집착"

벼락경 : 진정한 자유로의 자유로


금강경이나 보통사람은 나로부터 시작된 대상을 향한 집착을 벼락같은 지혜로 단칼에 잘라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도올 선생은 나를 죽임으로(아상을 죽이는 행위) 집착의 원천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욕망의 자아가 살아 있는 한 집착을 잘라버리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이고 또 다른 욕망이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연결된다.

오늘 지름신이 와서 다음 달 카드 갚을 보고 그다음 달은 절재가 가능하나, 계절이 바뀌고 트렌드가 바뀌면 다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지름신은 어떡칼겨? 애인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싸우고 아쉬워하고 상처 받고 싱글이 되었는데 다시 찾아온 사랑에 또다시 집착하는 사랑은 사랑일까?


프랑스 심리학자 라캉의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에서 보듯, 끊을 수 없는 삶의 욕망과 집착은 내 삶의 고뇌와 상처 속에 옳아 매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지 못하는 원천이라 본다.

나를 죽인다.

나를 부정한다.

그리하여 자유로워진다.

졸라 멋있는 삶이지.



자유인(해탈)의 삶을 보여준 위인들이 여기 있으니!


(이스터 연휴에 사놓고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는데 몇 주 후에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를 읽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고타마 싯다르타(부처, 석가모니). 산스크리트어인  그의 명칭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이야기하려면 또 글이 길어질 것 같아 넘어가고. 중국식 음차를 인용해 석가모니로 알려진 그에 대해선 인도 사람, 불교의 창시자, 석가탄신일에 비빔밥 베푸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책 싯다르타에서 그를 만나보니 괜히 사람들이 종교를 만든 게 아님. 일단 금수저에 학식도 풍부하고, 사업해서 대박도 나고, 아름다운 여성도 취해보고, 자식도 있었던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져본 남자였다.

흑수저가 돈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고 말하면 모두 그의 행복을 불신하지만, 재벌 건물주님이 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 라고 하면 약간 설득된다. 그렇듯 세상에 많은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다 가져본 석가모니가 집착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자유(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하니 그를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서산대사

나는 한국사에 너무도 무지하여 서산대사 하면 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전투하는 국사책 그림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박광진의 민족기록화 중 승군을 지휘하는 휴정(서산대사) 유화를 찾아보시길). 왕이란 놈은(선조) 대한민국 어느 대통령같이 백성들 다 버리고 의주로 도망갔는데,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가르침보다 더 고귀한 가치인 민중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서산대사는 전쟁이 뛰어든다. 이순신 장군님과 많은 승려들의 활약으로 나라를 구하고 선조는 그에게 정2품(행정부 장관, 도지사 레벨)을 하사하지만 집착 없이 그냥 산으로 들어가 좌탈(앉아서 해탈) 해버린다. 당시 키보드 부대였던 유생들에 의해 수많은 불교 승려들의 업적이 기록되지 않음이 통탄할 따름이다.



법정스님 하면 일부는 모를 수도 있지만, 무소유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분을 모르는 한국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분에 관해 무슨 말이 필요하랴. 현대인에게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법을 한 권의 책과 삶으로 보여주신 분.




3. 빈 수례가 요란하다

지혜와 계율의 상관관계


지식과 겸손은 U자 곡선을 그리는데, 지식이 조금 늘어나면 겸손 레벨이 바닥을 치고 지식이 많아지고 지혜가 늘어나면 겸손은 다시 하늘을 찌른다. 문제는 어설프게 아는 놈들이 정치를 하게 되니 보수의 본질을 넘어 그저 반정부, 반 이념, 반정책을 하며 계율을 중요시 여기고 진정 민중을 위한 정책은 펴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더라.


경허(송동욱) 이 분은 불교의 지식뿐만 아니라 대중을 향한 사랑도 가진 분이라 너무 존경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여인이 경허의 방문을 두들인다. 그는 그 여인을 방으로 맞이하고 경허의 시중을 들던 사미승은 그 모습을 보고 온갖 추측과 의심, 걱정을 한다. 여색을 경계해야 할 불교에서 그의 반응은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대빵 스님에게도 일러바치고 결국 동네 소문이 다 난다. 하지만 경허는 열흘이 지나도록 방으로 밥상만 받고 어쩐 일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스님들과 불자들은 경허스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하지 않고 무조건 여자가 방에 들어간 것에만 분노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그녀를 경허의 방에서 강제로 끌어내리려 모여든다. 결국 그 여인은 방에서 나왔고. 그녀의 모습을 본 대중은 충격에 휩싸인다.


그녀의 코와 얼굴은 문드러지고 짓물러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고 손가락도 다 썩은 나병환자였다. 할 말을 잃은 대중과 제자들은 침묵에 싸이고. "내가 지은 복이 이것밖에 되질 않으니 면목이 없소이다."라고 경허는 말하고,  문둥병 여인은 마지막으로 입을연다.


"보시다시피 저는 몹쓸 병에 걸려 얼굴도 짓물러 터지고 코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뭉개져버린 이런 여자입니다. 춥고 배가 고파 구걸을 나가도 모두 더럽고 징그럽다고 기피할  어느 누구도 찬밥  덩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못해 스님 방까지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언몸을 녹여주시고 밥을 손수 먹여주셨으며 냄새나는 고름과 진물을 닦아주셨습니다. 평생 이런 호강은 처음입니다."


눈물이 났다. 글을 읽는 나도 우는데 그 당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애통했을까.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우리의 모습이다. 법과 윤리, 전통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간미를 잃어버리고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옭매여서 누군가를 상처 주는 모습. 지혜가 너무 부족해서 그렇다.

19세기 조선 민중의 처참한 생활상과 부자의 49재 고사 에피소드. 머슴살이 김 서방, 이 서방을 모두 부처님으로 대우하는 경허의 모습도 책에서 보시라.


에이브라함 링컨 내가 정말 혐오하는 말이 있다. "원래 그렇다"  그러니 변화시키거나 개선하려 하지 말고 입 다물고 그냥 그렇게 따르라. 분명 오도된 전통일 수도 있고, 공공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제도 일 수도 있지만 원래 그랬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건들지 말라는 족속들. 링컨은 흑수저에 노동자의 삶을 살다가 변호사, 주의원을 거처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헌법의 이해와 실천을 제대로 보여준 존재이다. 그 당시 성경과 법으로 보장된 노예제도를 혐오하고 전쟁을 불사하며까지 만민평등을 실천한 위대한 사람.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건들지 말라는 남부 기득권자들에게 승리로 자유의 선물을 흑인과 역사에 남긴 사람.


지금도 세계 모든 나라 동네 방방곡곡에 차별이 존재한다. 여성에 향한 차별, 가난한 자, 배우지 못한 자, 성적 취향이 다른 자, 몸이 불편한 자들에 대한 차별. 그들에게 주어진 차별과 멸시에 법과 종교, 전통을 들이대며 지혜와 사랑 없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무지한 자들. 경허와 링컨은 말한다 "깝치지 마라."







해우소에서 스퀏 자세로 밑씻개를 뒤척이다 발견한 반야심경과 씨름해서 얻은 스무살 도울 선생의 깨우침!


나는 좆도 아니다

(본인의 호를 "도올"이라 칭한 것은 스스로를 "돌"대가리라 여기가 때문이라는 썰이 있다.)

그의 통찰에서 한 명이 떠올랐는데...


 내가 아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


약 2400년 전 아테네에서 하늘의 별만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사람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철학자와 비슷한 맥락의 통찰을 우리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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