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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Oct 14. 2020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중간'을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나쁜 경우에 이 습성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데, 예를 들면 누군가 '더 빨리, 더 빨리하란 말이야!'라고 나를 보채면 평소보다 빨라진 나의 템포를 인식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어 진다. 왜 나는 빨리 가야 하지? 이 방향이 혹시 잘못된 방향은 아닐까? 내가 빨리 가다 놓친 것은 없나? 생각하곤 한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타인에 의해 극한으로 몰아붙여지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강요받는 경험이 있다. 나와는 이러한 방식이 정말 안 맞다고 느낀다. 그들에겐 내가 적당히 하고 마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대게 몰아붙이는 타입의 사람들은 몰아붙여지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입장에서, 나의 가치를 가늠하며 그러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나의 성장을 바라며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지점이 속상하다. 나는 그들이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공통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마음껏 공유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소중하고 좋다.


내가 엉뚱한 생각을 가져왔을 때, 더 엉뚱한 길을 가보게끔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는 뭐랄까, 짜릿하다. 엉뚱한 짓을 해왔는데, 나보다도 더 흥미롭게 그것을 바라봐준다면, 엉뚱한 일은 특별한 일이 된다.


내가 무언가를 창조할 때 받은 도움 중 최악의 경우는 이것이다. 내가 가져온 것의 핵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을 보고 떠오른 심상, 아이디어를 나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구체적으로. 내 핵심의 초점이 잘못돼서, 그것에 대한 재 논의를 말한 것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을 텐데, 이런 경우는 상대의 초점에는 관심도 없고, 본인이 흥미를 느낀 지점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럴 땐 정말 의욕이 상실된다. 이 경험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길을 제시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르게 하고 내가 바라는 것을 한 번 맞춰봐, 라는 식의 태도는 창의에 있어서 분명한 에너지 낭비이며 비효율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일까? 정말 다양한 대답들이 존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의 모습이 있다면, 아주 잠깐 시간을 내어 내게 알려주기를 공손히 요청드린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 내가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가 된다면 명심  명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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