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학과의 졸업 전시는 지금 어디에 와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의 디자인학과 졸업전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앞으로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지금의 졸업전시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당장 졸업전시에 임하는 학생들의 태도를 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 그것들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졸업 논문을 대신해 전공학과에서 수학한 것들을 선보이고 그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졸업전시
-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전에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은지 선보이는 디자인 철학을 선언하는 졸업전시
-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 관련된 능력을 선보이는 전시
- 자신의 새로운 시각 또는 관심사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
여기서, 졸업 논문을 대신해 '전공학과에서 수학한 것들을 선보이고 그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졸업전시'의 '인정'의 주체가 디자이너 자신이 아닌, 담당 교수님 혹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나 기업이 될 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은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겼을까?
이런 현상에 의해 졸업전시의 의미는 어떻게 변질되었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인식의 변화가 나타났을까?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꼭 변화해야만 하나? 많은 지점에 의문이 생긴다.
나는 원래 3학년 2학기를 마친 후 휴학 없이 졸업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휴학을 하고 인턴생활을 하게 된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졸업전시를 위해 사전에 전시자들이 모여 진행한 회의 때문이었다. 어떤 전시를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까.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모두가 뭉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있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무언가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하게 될지도 몰라. 내가 졸업전시에 너무 큰 의미를 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그 회의에서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고 쓸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회의는 임시 졸업준비위원회장을 제비뽑기로 선정하고, 해산됐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이 세상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원래라면 우주를 들썩이게 했어야 할 회의가 제비뽑기로 끝난 상황)에 이의 제기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니, 그리고 당장 나 또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 분했다. 그러고 보니 옆사람에게 딱 한마디 했다. '진짜 이렇게 끝이라고?'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나 하나만 잘못된 걸까? 나 자신을 부정하기보다는 긍정해 보기로 했다. 회의에서 마주친 몇몇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들에게 졸업 전시는 귀찮고 성가신 것,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히 내가 재학 중인 디자인학과의 경우, 한 해에 졸업 전시를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통과와 불통과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결정적으로 통과/불통과의 기준이 나 자신이 아닌, 교수님이라는 생각 또는 현실이 문제의 시작인 것 같았다.
스스로의 디자인에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그것이 가능한 학생을 졸업시키기 위해 졸업전시가 존재하고 그것의 안내자로서 교수님이 존재하는데, 내가 목격한 둘의 관계는 교수님의 몇 마디 말에 학생이 중심을 잃고 마구 흔들리는 식이었다. 교수님의 몇 마디 말의 목적이 분명 혼자 서기에 나선 학생을 마구 흔들어 넘어트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둘의 관계는 대립구도가 되어있었다. 나의 홀로서기를 돕는 사람이 나를 시험에 드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선 학생의 입장에서, 내가 교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교수님의 몇 마디 말은 개인의 기호에 의한 '그렇게 해, 또는 하지 마.' 수준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논의의 가치도 없이 굉장히 잘못됐다. 앞으로 만나게 될 클라이언트들도 이렇게 변덕스럽다며 변덕을 부려 학생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그냥 회사에 취직해 진짜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것이 백 배 천 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교는 클라이언트 대면 예행연습을 하려고 값비싼 등록금을 내고 치열한 입시 생활을 겪으며 입학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님은 나의 둘도 없는 조력자라는 생각. 그리고 최대한 내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겪어본 다음 해결한 것과 해결 중인 것, 해결하지 못한 것 등을 이야기하며 내가 어떤 과정을 겪고 있고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1학기 졸업전시 중간 리뷰에서 세명의 교수님 중 유일하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던 교수님을 2학기 담당 교수님으로 선택해 수업을 듣고 있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볼 수 있게 하고, 현재 고민하고 있는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신다. 그 덕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또한 당시에 부정적 피드백과 함께 고민해보라며 제안해주신 피드백 방향이 있었는데, 현재 프로젝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바로 내 프로젝트에 반영하는 행동은 절대 지양해야 한다. 교수님의 피드백이 못 미더워서가 당연히 아니다. 내 안에서 움튼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있고 이때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바로 나인데, 그 모든 과정을 100프로 공유했다면 또 모를까. 직접적 도움보다는 제언하는 교수님의 피드백을 그대로 내 프로젝트에 반영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보다는 피드백이 발생한 지점을 큰 틀에서 맥을 짚듯 짚어 보고, 파고들어 나만의 피드백을 역으로 제안해야 한다. 교수님의 피드백 방향이 나의 프로젝트에 완벽히 맞아떨어지더라도, 검증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내게 졸업전시의 의미는 내 안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디자인을 통해 실현하는 방향에 가까운 것 같다. 어떤 기준이냐 하면, 정답도 오답도 없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겠지. 그리고 나는 이 시끄러운 고요가 싫어 글을 쓰며 소란을 피운다.
모두의 졸업전시가 반짝반짝 빛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