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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Sep 12. 2020

디자인 여행은 계속되고

디자인 여행을 되돌아보며


휴학 후 약 1년 동안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디자인 아웃풋을 내보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대부분 소진됐다. 인풋 없는 아웃풋의 연속으로 이렇게 소진되고 마는 것이 디자인이라면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최신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크리에이티브를 강요받는 것이 디자이너라면 디자이너는 1년 365일 24시간 내 눈에 미처 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일 것이다.

다행히 휴학 전에 찾은 몇 개의 물음표와 느낌표들이 '디자인은 소모적인 것이 아니야.' '디자이너는 불안이 아닌 확신을 안고 나아가는 거야.'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잠깐 멈추어 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 도쿄 디자인 여행에 대한 글을 마치지 않은 이 시점에 언어로 정리한 나의 여행을 되돌아보고 싶다. 여행에서 찾은 크고 작은 물음표들이 글을 통해 조금은 선명해졌지만 이것들을 한번 더 정리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도쿄 디자인 여행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인턴 그리고 정규직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도 있겠다. 나는 이제 꽤 멋진 디자이너가 됐을 거야. 자신만만하게 복학해 시작한 졸업 프로젝트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내가 느낌표를 찾아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까지도 내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첫째 날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는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둘째 날 마츠야 백화점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굿 디자인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굿 디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셋째 날 츠타야에서는 디자이너로서 정의 내리는 스스로의 역할 범주에 대해서, 나는 3박 4일 여행을 통해 물음표를 잔뜩 달고 돌아온다.


이것에 대한 답을 찾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으스댄 꼴이 우습다. 그렇게 방치해둔 물음표들은 내 안에서 점점 커졌고, 글을 통해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디자인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은 또 하나의 디자인이다.'라는 하라켄야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는 '내가 디자인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만한 결과물이 아직까지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섣불리 '내 디자인'을 바라는 것은 내가 누군지도, 어떻게 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나를 대변해줄 디자인을 바라는 꼴이니까. 이 상태를 이때까지는 '내가 아직 모자라서', 라는 이유로 내버려 뒀는데, 이렇게 디자인에 대한 물음표를 언어로 정리해 보니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의미 있는 순간들이 잔뜩 생겨난다. 반추의 과정을 통해 일부 물음표에 대한 느낌표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내가 회사에서 겪었던 가장 큰 문제는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아웃풋의 고갈 상태'보다 '욕심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상태였다. 회사에서는 내가 욕심 내어 디자인하기를 원했다. 왜 나는 욕심이 없을까? 더욱 욕심내어 보라는 말들은 오히려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욕심을 가지는 것이 어려워 ‘욕심이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라며 욕심을 미워하기도 했다. 나는 당시에 욕심이 아닌 확신이 필요했다. 확신이 없었기에 욕심 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확신을 찾으려 했지만, 지금은 내가 좋은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정도 확신만으로도 욕심내어 디자인할 수 있다. 내가 이전보다 조금은 더 좋은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확신, 이에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도쿄 디자인 여행은 곧 끝이 난다. 앞으로는 여행에서 돌아와 시작한 졸업 프로젝트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찾은 몇 개의 느낌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모자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아직 모자라기 때문에   있는 글이 있기에,  글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것이란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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