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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Nov 27. 2020

내 동생 곱슬머리

뒷담화

내 동생은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섬세하고 예민하다. 글쎄 섬세하다고 해야 할까.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걔는 내가 10년 전에 한 말을 기억한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무슨 말을 했는지 줄줄 읊을 때면 놀라운 동시에 부담스럽다. 무슨 그런 것까지 기억하나 싶다. 


예민한 걸로 따지면 아마 세계 10위권 선수일 것이다.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잠에서 깨고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를 거실에서 맡고 아주 발악을 하며 쌍욕을 퍼붓는다.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의 합이 중요하다며 궁합 좋은 음식을 어우러지게 먹는다. 


게다가 소심하기는 얼마나 소심한지 조금만 나쁜 말을 들어도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진다. 어릴 때 나는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편이어서, 내가 동생보다 항상 빠르게 익히고 칭찬을 듣는 쪽이었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동생은 빨리 손을 떼 버렸다. 의기소침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였는지. 


이 뒷담화 서론의 이유는 내 거짓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을 때부터 동생에게 거짓말을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종류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동생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은 칭찬이다. 동생에게 칭찬을 하거나 좋은 이야기를 할 때면 거짓말로 지어내곤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기소침한 동생에게 칭찬 한 마디를 건네면 금세 기분을 풀었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놀리다가도 시무룩한 모습을 보면 거짓으로 칭찬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 동생 놈이 너무 기억력이 좋은 거다. 나는 오래된 일은 모조리 잊어버리는 사람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일인데, 동생이 그 옛날 일을 우리 싸움의 증거로 제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 팔뚝 얇잖아

니가 무슨 팔뚝이 얇아

십 년 전에 언니야가 내 보고 팔뚝 얇다매


안다. 유치하다. 안다. 정말 사소하기 그지없는 싸움이다. 자매형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렇게 사소한 문제가 불쏘시개가 되어 거의 산불이 난다. 아주 패가망신에 달하는 불이 나기도 한다. 그 불쏘시개가 최근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나는 기억이 안 나서 미칠 지경이다. 게다가 옛날의 내가 동생에게 한 대부분의 칭찬은 거짓말이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해야 할까.


얼마 전 통화를 하다가 또 사소한 싸움이 붙었는데 동생이 또 나의 말을 자신의 장점의 근거로 들었다. 물론 내 말로 인해 자신의 장점이라 착각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 본인이 생각했을 때 나의 장점이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터. 그런데 왜! '언니야가 10년 전에 그랬잖아!'라는 말을 하는 걸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 아마 그 말도 거짓말이었을 거야..라고 말할 수도 없고.


최근에는 구민현도와 자매간 거리두기 5단계를 시행하고 있다. (*구민현도는 내 동생 5조 5억 개의 별명 중 하나다. 개명을 해서 이렇게 부른다.) 거리두기 5단계는 자매 사이의 거리를 조금 멀리 두어 서로의 단점을 줄이고자 하기 위해 시행했다. - 내가 일방적으로 시행하긴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연락을 줄이고 이야기 공유를 끊어내는 것. 이렇게 당분간 거리를 두다 보면 조금 더 돈독한 자매관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대로 계속 모든 이야기를 공유하고 연락을 자주 하다 보면 오해도 상처도 깊어갈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러다 내가 동생을 손절 치겠구나 하는 위험한 생각이 들었고 손절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동생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도 없고, 자매만큼 잘 맞는 관계도 없으니.


내 하얗다 못해 아주 시퍼런 거짓말은 지옥까지 가져갈 예정이다. 어쨌든 그 순간에는 내가 동생의 기분을 풀었을 테고 동생은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을 테니. 지금 와서 그 자신감을 흔들 수 없다. 내 거짓말이 업보로 돌아와 자매 싸움에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자매간 거리두기로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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