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컴퍼니에서는 네이버 밴드를 사용한다. 팀별로 밴드 채팅방이 있는데, 거기서는 출·퇴근 시간에 맞춰 '출근합니다' '퇴근합니다'라고 채팅을 쳐서 출퇴근을 인증한다. 또, 업무 보고는 인증 기능을 통해 진행한다. 각자 입사할 때 정했던 업무를 하루동안 어떻게 진행했는지 글을 쓰면 인증이 완료된다. 업무시간의 활용은 각자 자유롭게 한다. 어떤 사람은 외근을 다녀오기도 하고, 시간 안에 업무를 진행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기도 하며, 병가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6주간 업무를 진행해본 결과, 느슨한 규칙과 자율적인 분위기가 생각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장생활 동안에는 엄격한 규칙과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압박감을 느꼈다면, 백수 생활 동안에는 규칙없는 혼란과 통제없는 자유 속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그 중간지점을 찾고 싶었지만 혼자 힘으로는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나름의 규칙을 만든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해이해지기 마련이었고, 혼자서 모든 행동을 짚어가기엔 왠지 모를 무기력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니트컴퍼니는 규칙은 있지만 너그러운 분위기고, 자유롭지만 업무 인증으로 동기부여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일과 삶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과 삶의 회복 과정은 니트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재활치료를 쫓기듯 성급하게 진행한다고 빨리 낫지 않듯이, 니트 상태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냥 쉬는 게 아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여러가지 사정과 이유로 '아무 역할이 없는 상태'로 지내긴 하지만, 마음속엔 항상 불안함과 두려움이 함께한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뭐부터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공백이 길어질수록 뭐든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조급해진다. 갈피 없이 닥치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데 속으로는 '이걸 하는 게 맞나' 싶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냉정하다.
'자, 공백기간 동안 충분히 쉬었지? 그럼 이제부터 일 해.' 더 늦으면 인생이라도 쫄딱 망한다는 듯한 말들. 등 떠밀리듯이 벌여 놓은 일들은 결국 얼마 못 가서 수포로 돌아가고 일상은 다시 무너진다. 또 포기해? 네가 그럼 그렇지 뭐! 알아서 해, 난 이제 모르겠으니까. 등 뒤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자책과 절망이 겹겹이 쌓이면 더 심각하게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니트 상태에서 경험한 시간들은 이러한데, 과연 단순히 '쉬었다'고만 표현할 수 있는 기간일까?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 점에서 니트컴퍼니 활동은 상황과 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하지만 처음에는 매번 출퇴근 채팅을 치는 것도, 업무 진행한 사진을 찍고 밴드에 인증 글을 작성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켜봐주는 사람들과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계속 진행할 힘이 났다. 가끔 출퇴근이나 업무인증을 까먹는 동료들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 사는 건 원래 이런 거지'라며 마음을 너르게 먹을 수도 있었다. 각박하고 날카로웠던 마음이 하루하루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짐을 느낀다.
니트컴퍼니의 업무인증은 결과보다 과정에 좀 더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결과만 제대로 나오면 과정이야 어쨌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를 내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빠르게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한계를 느꼈다. 뭐든지 일이 닥치고 나서야 진행하는 습관이 들어 무리할 때가 많았고, 결과마저도 들쭉날쭉 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인지 결과가 나오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허무했다.
그런데 니트컴퍼니에서의 생활은 지나면 지날수록 더 기운이 났다. 사내 활동들은 제법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고, 차근차근 업무를 기록해나가는 과정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의 성장 과정도 계속 볼 수 있기에 하루가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소통하고 서로 응원과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덕분인지 지칠 때가 찾아와도 다시금 동기부여를 받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보람을 느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칭찬과 응원을 듣는 게 정말 좋다. 막상 들으면 어색해서 고장난 로봇 같아져도, 속마음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다. 어릴 때부터 칭찬 받고 싶어서 뭐든지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칭찬과 격려를 들으면 더 잘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반대로 꾸중을 듣거나 비난을 받으면 괜히 주눅들고 더 안 하게 된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처음 밴드에 업무 인증을 시작하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동료들의 활동을 최대한 응원해주자고. 매일 댓글을 달 수 없다면 '좋아요' 스티커라도 달아주자고. 여유가 생기면 틈틈이 스티커를 남기고 댓글도 달다보니 점점 다른 동료들도 스티커를 남겨주고 댓글로 응원과 격려를 해줬다. 이렇게나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내적 관종은 오늘도 행복하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은 칭찬만 해주면 나태해지고 버릇 나빠진다고. 하지만 나는 칭찬이 사람을 나태하거나 건방지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한 관심과 따뜻한 격려, 적절한 칭찬과 꾸준한 응원은 오히려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이는 어린아이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긍정적인 감정에 무뎌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관심과 격려, 칭찬과 응원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 뿐이지. 그래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결되어 있다면 일상이 되고, 일상이 되면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길 테니까.
동료 중 한 분이 내가 달아놓은 댓글에 힘이 되었다며 쓴 글을 보았다. 내 작은 몇 마디가 마음에 와 닿았다는 말을 들으니 좀 더 열심히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말 한 마디라도 좋게 하자는 책임감이 생긴다. 거창할 것은 없다. 일상적인 응원만으로도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