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젊은이로 살아가면서 터득한 지역 사회 젊은이의 지혜를 몇 개 공유하려고 한다. 혹시나 수도권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 특히 나이가 아직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무조건 인사부터 할 것.
언제 어디에서나 만국 공통 기본 중의 기본, 필수 중의 필수 항목이다. 인사가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안녕하세요. 웃으면서 딱 다섯 글자만 또박또박 말하면 된다.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자에게는 지역에서 무시와 홀대가 예고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안그래도 폐쇄적인 지역 사회 분위기에서 젊은이는 어디서든 주류가 아니다. 모든 곳에서 주류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지역 사회에서 정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주류에 끈을 붙여 두는 편이 아주 많이 훨씬 백배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인사를 잘 해야 한다.
싹싹한 것이 어렵다면 누구에게도 밉보일 짓을 하지 말 것.
지역 사회의 주류 나이는 40~60대 라고 봐야 한다. 즉, 부모님뻘이거나 부모님보다 조금 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지역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다. 특히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한 다리 건널 필요도 없이 반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이다. 이런 곳에서는 싹싹한 성격이 유리하다.
싹싹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성격이 도저히 그렇게 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밉보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잘못 보이면 온 동네에 소문이 난다. 앞서 말했듯이 한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지역네트워크의 범위는 아주 넓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나서서 밉보일 짓은 하지 말자. 예를 들면, 어디서도 진상처럼 굴지 말아야 한다. 내가 오늘 진상을 부린 공무원이 이 지역 유지의 아드님일 수도 있고, 내가 오늘 욕한 가게가 이 지역 유지의 사모님의 절친일 수 있다.
아, 그리고 싹싹함의 기본은 미소다. 상황에 따라 잘 웃기만 해도 된다. 나 역시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지만, 일단 어느 상황에서나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었다. 묻는 말에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싹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묻는 말도 별거 없다. 이름이 뭐냐, 나이는 몇 살이냐, 여기는 어떻게 왔냐, 고향이 어디냐, 직장은 어디 다니냐 정도다.
다소 사생활에 관한 질문이지만, 생각해보면 처음 본 사람한테 물어볼 게 그것 말고 더 있을까? 어른들도 똑같다. 친해지고는 싶은데 할 말이 없을 때 하는 말이다. 괜히 캐묻는다 생각해서 기분나빠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늘 들어도 다음에 까먹고 또 다시 물어본다. 밥 먹었냐, 같은 인사치레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사 잘 하고 미소 짓고 묻는 말에 대답만 잘 해도 '싹싹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어렵지 않다는 걸 꼭 명심하고 실천하길 바란다.
무리의 수장을 찾아가 인사드릴 것.
앞서 말한 것들이 기본이라면, 이것은 나름의 꿀팁이다. 지역, 동네 단위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그 무리의 수장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지역의 무리는 수장의 입김이 세게 적용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세력이 나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수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수장을 수장 대접 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게 무슨 겉치레냐고 우습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수장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다'고 기분 나빠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동네에서 뭔가를 하는데 이장님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다? 백프로 싫어한다. 그러니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무조건 수장을 찾아가 인사드리고 전후사정을 설명하는 편이 좋다. 그러면 동네에는 수장이 알아서 전달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시골에 집을 알아보러 갈 때 그 동네 이장님을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면 좋다. 이장님댁 어디냐고 물어보면 동네 할머니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실 것이고, 혹은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어봐도 알만한 사람은 안다. 인사드리고, 동네에 빈 집이 몇 개 정도 있는지 등의 가벼운 질문을 해도 좋다. 이사 오려고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면 왜 우리 동네로 오려고 하냐 정도의 질문을 듣게 될텐데, 동네의 인상이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말하며 동네 칭찬을 얹으면 더욱 좋다. 나는 전입신고를 할 때 이장님한테 인사차 전화를 드렸다. 면사무소에서 그렇게 하라고 권하기도 했고, B선생님이 앞서 말씀을 전해놓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외지인인데도 나름 친화력을 얻어 동제(冬祭)에 참석해본 경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애정을 가질 것.
다른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애정이다. 내가 정착할 이 동네, 이 지역, 이 장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앞서 말한 정보들은 무용지물이다. 내가 서 있는 이 곳에 대한 애정 없이는 저렇게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해서 제일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거지만, 제일 중요한 요소이니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한 장소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요소는 사람마다 다르고 여러가지가 있겠다. 나같은 경우는 '사람'과 '풍경' 이었다. 동네분들이 다들 친절하시고 인심이 좋았기 때문에 함안이 좋았다. B선생님과 A선생님과 함안에서 만난 모든 어른들이 내게 상냥하고 다정했기 때문에 함안을 좋게 볼 수 있었다.
다음은 풍경이다. 사실 함안은 풍경이 빼어난 곳이라고 하긴 어렵다. 곳곳에 공장이 꽤 많이 들어서서 시골의 정겨운 풍경을 망치고 있다는 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수관에서 바라보는 당산나무까지의 논밭과 밤하늘의 별, 때가 되면 찾아오는 제비와 제비집의 풍경과 따사로운 사계절의 햇살, 가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말이산 고분군의 아름다운 정경이나 무진정과 성산산성의 고즈넉한 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애정을 가지고 함안으로 왔으며, 편안한 부분이나 불편한 부분이나 모두 감내하고 살아갈 다짐도 할 수 있었다.
아직 지역 사회로 녹아들기가 망설여지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마 시골 텃세 이야기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는 없다. 지역에 따라서 그런 경우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래서 정착하기 이전에는 동네 인심이나 소문부터 살피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부디 명심해줬으면 하는 점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면 된다.
웬 낯선 사람이 갑자기 와서 살겠다고 하면 당연히 경계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좋은 사람인지 이상한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까. 지역은 자신의 바운더리를 모두 일상의 공간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공간에 사람 하나를 들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누가 옆집에 이사를 오는가' 이게 생각보다 지역의 토박이들에게는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아파트 윗집이나 옆집에 누가 오는지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서로에게 신경쓰며 살아가면 그 뿐이다. '저 사람이 텃세 부리는데 내가 왜 호구처럼 친절해야 해?'라는 날카로운 마음은 내려놓길 바란다.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어쩌면 아직은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낯선 곳에 처음 온 여행자의 마음으로, 너그럽고 여유로운 농부의 마음으로, 먼저 친절하게 다가가보자. 아무리 질긴 텃세도 악한 마음을 품지 않는 이상 한 달은 안 간다.
우리 동네 고라니 우는 소리 말고 사람들 웃는 소리로 가득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