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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Nov 11. 2023

ep5. 저희 농악해요

지금은 내 예비 배우자 K는 함안화천농악을 하고 있다. 


함안에서 '농악 한다'고 하면 대체로 함안화천농악 하는 줄 알지만(경상남도 무형문화재이기도 하고 함안에서 농악은 꽤 큰 자부심으로 통하기 때문에) 농악이나 풍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게 뭔데?'라고 말한다. 언젠가 한 번은 접해본 적 있을 테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나 사건은 아니었을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로 그렇다. '농악 한다'는 설명은 다소 불친절한 면이 있어서, 나는 구체적으로 내 일을 설명할 말을 고민하곤 한다. 


반면 K는 입장과 역할이 명확하다. K는 함안화천농악에서 소고수이다. 소고를 치며 상모를 돌리고, 판에서 흡사 '날다람쥐'처럼 돌거나 날거나 뛴다. 그 모습을 사귀면서 계속 지켜봐왔기 때문에 K가 농악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기꺼이 그러라고 했다. 농악 하는 K는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눈빛에서는 특유의 빛이 반짝이곤 하는데, K가 농악을 할 때가 특히 그랬다. 


얼마 전 KNN 다큐멘터리 '천년의 유산 - 함안화천농악' 편에 출연해서 대미를 장식했을 때, 나는 K가 언젠가 함안화천농악의 대체불가능한 전승자가 되는 상상을 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을 걸고 K를 응원하고 싶었고, 그래서 함안으로 와 정착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간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보존회 사무국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하면서,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많이 겪었다. 내 본질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막상 보존회에서 하는 일은 글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는 K의 일을 돕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는데, 보수를 받고 일한다는 이유로 점점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까지 버텨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보존회에서 필요로 했던 일은 일반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할 때와 다름이 없었다. 처음에는 아라제 사무국에서 홍보 담당으로 일할 때랑 크게 다를 게 없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담당해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게다가 차장님이 사정상 그만두게 되면서 심리적 고립감은 더욱 심해졌다. 거기에 더해 이벤트회사 현장 업무와 같은 일들(행사장 세팅, 공연 음향 담당, 사진 촬영, 인원 모집, SNS 홍보 등)을 직접 뛰어야 하다 보니 가뜩이나 나약한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속으로 '내가 지금 뭘 하는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K의 일을 도우면서 겸사겸사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수는 업무 강도에 비해 택도 없었고, 내가 감당하기에는 몸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물론 보존회에서 챙겨줄 수 있는 최대치를 챙겨줬으나, 회사에 다닐 때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 였지만, 그조차 바쁜 업무에 치이다보면 아플 때나 겨우 조퇴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함안화천농악과 함께 해야 좋을까? 고민은 끝이 없었지만, 얼마 전부터 나는 고민에 종지부를 찍었다. 내가 함안화천농악을 연희하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나 나는 제3자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제3자라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함안화천농악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대신 대가를 기대하는 일은 아니어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재능(이미지 만들기, SNS 업데이트 하기, 아카이빙 하기, 그림 그리기, 필요한 홍보 문구 만들기 등)을 발휘해서 도울 수 있다면 다회성으로 도울 순 있어도, 정규직처럼 일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내 일'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행사를 하면서 몸이 버티지 못해 결국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나서, 나는 한동안 완치 상태라고 볼 수 있었던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재발하고 말았다. 지병화되어 몸에 이상증상을 몰고오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관리해야 했다. 그래서 사무국 일을 멈추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내년에는 아예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필요하다면 투입되는 인력으로라도 머물고 싶은 마음이 내게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마음은 K에 대한 애정과 무관하지 않지만, 결이 조금은 다르다. K가 아니더라도 보존회의 식구들과 쌓아온 시간과 추억이 고유의 애정을 만들어냈고, 함안에서 함안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함안에서 살 지, 무엇을 지속적으로 해내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고민하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내게 남은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결혼식'이다. 이왕 쉬게 되었으니, 결혼식 준비를 잘 해봐야겠다.



함안화천농악보존회 취재하러 오신 <함안소식> 기자분과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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