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gbi Mar 31. 2023

ep4. 저질 체력과 그냥 하는 마음

내가 했던 일은 축제의 홍보 담당자로 SNS를 관리하는 것이었는데, 6월부터 8월 초까지 약 두 달 정도 일을 했다. SNS에 홍보 자료를 만들어 업로드 하는 정도면 저질체력인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케팅 업무도 해본 적 있으니 이 정도는 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할 만 할거라는 내 생각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사무실에서만 머무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축제 업무란 많은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축제 일은 아예 처음이라 'SNS에 홍보나 잘하면 되지' 같은 안일한 생각으로는 업무를 해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나는 B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스텝까지 겸해서 축제현장 곳곳을 다녔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열심히 보고 듣고 사진을 찍는 정도였지만, 홍보를 위해서라도 행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야 했다. 그래야 무엇을 어떻게 홍보할 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사진을 많이 찍어놔야 다음년도 홍보할 때 쓸 자료도 마련할 수 있으니 그것까지 고려해야 했다.



현장을 돌아다니는 일이란 보고 듣고 사진 찍고 잡일을 거드는 것 외에 하는 게 별로 없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체력 문제였다. 히키코모리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가장 안좋아진 부분이 바로 체력이었다. 예전보다 살도 많이 쪘고, 활동하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했다. 문제는 축제를 준비하는 인력이 생각보다 부족해서 엉덩이 붙이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이런 일도 하는 건가?'라는 일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기념품 포장이라던가, 축제 스텝 물품 제작(주차권, 식권, 스텝 명찰, 행운의 룰렛 제작 등) 이라던가, 행사장에 조명을 설치하는 일이라던가 하는 것들이다. 


심지어 축제 당일에는 행운의 룰렛 이벤트 진행 요원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도 무더운 7월에, 아라가야 의상과 왕관을 쓰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룰렛 돌리고 선물 받아가라고 목청이 터져라 호객행위를 했다. 아이가 돌린 룰렛에 꽝이라도 걸리면 슬쩍 밀어 당첨되게 만든 후 '당첨!!'을 외치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만약 남자친구 K가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뻘쭘하게 머뭇거리다가 이벤트가 끝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기념품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SNS 채널을 팔로우 하도록 유도한 후 무드등을 나눠주는 일이었다. 무드등 몇십 박스를 들고 가서 테이블과 배너를 세팅하고,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행사에 참여해보라고 호객행위를 하고 다녔다. 


머리털 나고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며 이목을 끌어본 적이 처음이라서 이벤트를 진행할 때마다 몸은 굳고 목소리도 떨리고 심장도 벌벌 떨렸다. 하지만 그냥 했다. 몸이 너무 힘드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거나 주어진 일을 다 해야 철수할 수 있으니까, 그냥 해내는 것만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가 다 저물었다. 이벤트를 진행할 땐 몰랐던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아이들은 어느 부스에서 받아온 목칼과 목방패를 들고 저들끼리 신나 고분군 위를 뛰어다니며 꺄르르 웃었고, 부부들은 오랜만의 데이트였는지 한 손은 꼭 잡고 각자 손에 음료를 들고 지나다녔다. 폭죽 대신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 불빛 쇼는 생각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힘든 것도 잊고 주변에서 터져나오는 탄성을 노래삼아 드론쇼를 감상했다. 



아 해냈구나. 어쨌든.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내 체력과 멘탈이 얼마나 저질인지 매분 매초마다 느껴야 했다. 일이 끝나고 전수관으로 돌아오고 나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욱씬거리고 아팠다. 마음이 안 좋았다. 이게 맞는지, 잘 하고 있는건지 의심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그 순간들이 절망과 자책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나는 왜 이거밖에 안 될까? 사실 잘 해보고 싶은데. 체력은 남들보다 한참 뒤떨어지기나 하고.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힘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는 선생님과 간사님도 있는데. 


하지만 힘든 건 사실인데? 원래 내 성격이랑 정 반대되는 일인 데다가 아예 처음 해보는 일이고, 내내 마음 못 잡고 있다가 이제 겨우 세상 밖에 나온 사람한테 뭘 더 바래. 남들이랑 내가 같은 것도 아니고,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잘 하면 좋은 거지만, 못 해도 그 뿐이다. 다음에 더 나아지면 되니까. 하물며 축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끝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끝까지 해보자. 도망치지 말고.



축제가 다 끝나고 나서 나는 조금 달라졌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뿌듯했다. 처음으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참 오랜만에 느껴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다음을 준비하며 8월을 보냈다.





연등터널. 철골대 터널 구조물, 전기시설 설치, 알전구 끼우기, 연등 달기, 소원지 붙이기....하다가 중간에 비도 내렸다.


스텝의 시선.


바닥에 꽂혀 있는 태양열전구 하나하나 꽂아넣어야 한다. 축제가 끝나면 다시 다 뽑아야 했다. 


환상의 드론쇼. 실제로 보면 웅장하고 멋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ep3. 내 집 없는 청년의 정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