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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브 Jul 27. 2020

약해진 마음에 진짜 내가 깃들 때

계획대로 된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겠지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그건 인생이 아닐 것이다. 나는 4년 만에 또 틀어져 버린 내 인생 계획표를 마음속에서 북북 찢어냈다.

  ‘이렇게 금방 일을 그만두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곧장 새로운 계획을 다시 만든다. 그리고선 또 마음속 걸이에 잘 걸어둔다. 반복이란 미련한 행동일까? 어린 날의 나는 사소한 실수와 작은 실패에도 크게 연연하고 흔들리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실패 이후 우연히 생기는 새로운 인연 혹은 사건들이 결국에는 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뜻밖의 결과에서도 꽤 괜찮은 이벤트가 생겨난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여전히 유약하고 어린 마음이 불쑥 불어와 파르르 떨릴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라는 것을 안다. 평소에는 무척 현실적인 나지만 인생에서 큰 계획이 틀어져 약해진 마음에 바이러스가 가득해지려고 할 때 저 아래에서 백신처럼 긍정적인 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뿜으며 조금 뻔뻔할 정도로 끊임없이 속으로 외친다. 될 사람은 된다고, 그리고 그게 바로 나라고 말이다.


 나는 한동안 대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몸은 힘들었지만 참 즐거웠다. 사소하지만 즐거운 에피소드들이 날마다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이 편안하게 살고 싶었던 나를 자꾸만 불편하게 했다. 혹시 이 길이 내 길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많았지만 최대한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고민과 걱정거리가 더 늘어나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정말 ‘이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끝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오랫동안 기꺼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고민과는 별개의 문제로 이 분야에서는 더 이상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더 이상 버텨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매번 편안하게 가려는 마음은 스스로를 나약해지게 만들었다. 그 나약함은 큰 실패나 포기의 전조 증상과도 같았다. 그래서 한 번씩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백신 버전의 내가 등장해 이를 바이러스로 인식하고 깔끔하게 제거해 버리려고 한다. 나는 인생에 있어 새로운 시도와 계획을 해야 하는 순간에 놓일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인다. 이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무너지지 않고 가장 나답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내 안의 백신 덕이다.


 그러니까 그걸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사실 크게 어렵지 않다. 여태껏 계획대로 되지 않은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로이 닿은 기회나 인연, 혹은 떠올렸던 생각들을 좋은 시선으로 잘 되짚어 본다. 그리고 그런대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내가 밟고 걸어갈 길도 결국에는 나의 최선이 될 거라고 굳게 믿어보는 것이다.


 나의 취향이 곧 나다운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를 설명할 때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나열하곤 했다.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해요. 이런 음악을 자주 들어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해요.’ 끊임없는 자기소개를 이어왔지만 막상 진짜 내가 누구인지,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내 스스로에게 조차 단 한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지난날이었다. 내가 누구며,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게 무엇인지에 대답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고민을 요구한다. 이 모두를 알아내는 과정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알아내고 깨달아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0년 이 여름날, 서른 즈음에, 나는 여태까지 시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로 가는 그 여정의 문을 열기 직전이다. 정말 오랫동안 막연하게 꿈으로만 남겨두던 시나리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하였다. 선택과 계획, 변경, 도전 그리고 또 반복. 아무래도 이 굴레는 내 평생을 다 바쳐야 끝이 날 듯 하다. 그리고 또 활짝 열어젖혀야 할 새로운 문 앞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가장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은 바로 자기긍정에서 생기는 이 기분 좋은 에너지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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