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 to be forgotten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릴 때면 늘 앉았던 자리를 되돌아보고는 한다. 혹시나 두고 가는 게 있을까 하는 마음에. 지갑이든 휴대폰이든 하다 못해 버릴 곳을 마땅히 찾지 못해 주머니에 찔러놓아 두었던 쓰레기든지 간에 하여튼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남겨두고 싶지 않다. 사실 정말로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은 어제에 남겨둔 후회다. 오늘의 나는 그것을 알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아마 오늘의 나의 허물을 바라보면서 모른 척할 것이다. 정말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인데 나는 애먼 것들만을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남들에 비해서 별다를 것 없는 지난 세월을 보냈더라면 좋았으련만 나는 연애에서도 일에서도 무엇하나 평탄하게 이루지 못했다. 구태여 겪지 않았어도 될 사람을 겪어내며, 모질게 잘라내지 못해 마음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그 사람과 네 번째로 헤어지던 날, 친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야기했다.
너는 네 팔자를 네가 꼬는 거 같아.
일을 하면서는 한갓된 욕망에 사로잡힌 탓에 망쳐버린 기회도 있었고, 괜스레 패배감에 젖어 날려버린 기회도 있었다. 남들과 경쟁하는 것을 피하는 성격 탓이었다. 바보 같이 경쟁이 두려워 기회를 고스란히 남에게 가져다 바치는 머저리. 그때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지금 와서 후회하면 뭐하리.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가끔 내 삶을 초기화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나에 관련된 부분만 쏙 빼서 삭제할 수도 있진 않을까?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차선책으로 나는 희미해지기를 선택한다.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연락처를 모두 삭제하고 인스타 계정을 닫고 카카오톡을 탈퇴하면 나는 섬처럼 고립된다. 그렇게 며칠간 나만의 섬에 틀어박혀서 아무와도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주는 아늑함은 생각보다도 훌륭하다. 나는 이것을 아주 가끔씩 한다. 사회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나만의 섬에 고립될 자유가 사라지므로. 이제는 번호를 바꾸고 연락처를 모두 삭제해도 완전히 고립될 수 없다. 업무 담당자는 나를 찾을 것이고 그러면 내 바뀐 전화번호를 다시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고립될 자유가 없이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 나는 유령처럼 희미하게 존재하고 싶은 인간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은 사실 그 '무언가'에 속박된 사람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만이 금연을 결심하는 것처럼. 나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다. 왜 사람들은 밤과 바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만 깊다고 할까. 나는 정말로 깊고 깊은 후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이것을 박차고 일어날 용기는 없다. 깊은 바다에 살고 있는 심해어가 뭍으로 올라와서는 오히려 숨을 쉴 수 없듯이, 나는 이 깊은 후회 속에서만 호흡할 수 있는 아가미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