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은 수요일,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었어요. 수업에 가기 전에 루체 씨는 루틴대로 아침 스트레칭을 시작했습니다.
요가가 제법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팔을 올리고, 내쉬면서 내리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거든요. 팔을 올리는 데 집중하면 숨을 참고 있었고, 숨에 집중하면 팔이 멈춰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엔 그걸 몸이 알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엉켜 있었지만, 몸은 조용히 자기가 할 일을 배워가고 있었어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인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몸이 유독 뻣뻣했습니다. 잠을 설친 탓이겠죠. 간밤에 꿈을 꿨어요. 정확히 무슨 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복도가 나왔고, 누군가 루체 씨를 지나치면서 뭔가를 말했습니다.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 뒤의 감정만 남아 있었어요. 서랍 속의 뭉개진 빵 냄새 같은 것.
해마야, 이제 그만 잊자.
루체 씨는 스트레칭을 대충 마치고 구청으로 향했어요.
강의실에 들어서니 익숙한 수강생들이 매트를 깔고 있었습니다. 루체 씨는 여전히 뒤쪽 구석 자리였어요. 두 달이 넘게 다녔지만 자리를 바꿀 생각은 없었습니다. 뒤쪽이 편했거든요.
수업이 시작되었어요.
"오늘은 조금 천천히 해볼게요. 몸이 피곤한 날에는 천천히 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거든요."
루체 씨는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천천히 하는 게 왜 더 어렵죠? 빠르게 하는 게 힘든 거 아닌가요?
하지만 수업을 따라가 보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천천히 움직이니까 몸의 감각이 더 또렷해졌어요. 빠르게 할 때는 관성으로 넘어가던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졌습니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 손가락을 꽉 쥐고 있었다는 것.
"턱의 힘을 빼주세요. 이를 꽉 깨물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 보세요."
루체 씨는 깜짝 놀랐어요. 정말로 이를 꽉 깨물고 있었거든요. 턱에 힘을 빼자 볼 안쪽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오래 깨물고 있었던 걸까요.
얼마나 오래도록 쥐고 있었던 걸까요.
"자, 이제 아기 자세로 넘어갈게요."
아기 자세. 전에도 몇 번 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쉬는 자세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루체 씨는 무릎을 꿇고 천천히 상체를 숙였습니다. 이마가 매트에 닿았어요. 매트의 고무 냄새가 코끝에 와닿았습니다. 팔을 몸 옆으로 늘어뜨리니 어깨에서 힘이 빠졌어요.
"그 상태에서 깊게 숨을 쉬어주세요. 등이 숨을 쉴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걸 느껴보세요."
루체 씨는 숨을 들이마셨어요. 등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내쉬니까 등이 내려갔어요. 그걸 반복했습니다.
몸이 작게 웅크려졌어요. 무릎 위에 배가 눌리고, 이마가 바닥에 닿고, 팔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닿지 않던 곳까지 숨이 스며드는 것 같았어요. 옆구리에도, 등 뒤쪽에도.
"이 자세에서 잠시 머물러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루체 씨의 코끝이 시큰해졌어요. 루체 씨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어요. 그래서 싫었던 거예요. 루체 씨는 루체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드니까요.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움직이면 실수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루체 씨는 루체를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벗어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디를 가도 루체는 루체였어요.
하지만 그런 루체 씨를 구하려고 하는 것도 루체였습니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고, 약을 먹고 있어요. 충실하게 매트 위에 나왔고, 숨을 쉬고 있었어요.
그냥 계속 있어도 돼.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어요. 이마는 매트에 눌려 있었고, 눈은 감겨 있었고, 몸은 웅크려져 있었습니다. 그때 눈물이 나왔어요.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감긴 눈에서 물이 흘러내려 매트 위에 떨어졌어요. 코끝에 닿아 있던 매트의 고무 냄새가 눈물과 섞였습니다.
왜 우는지 루체 씨 스스로도 잘 몰랐어요. 다만 이 눈물이 나쁜 건 아니라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웅크린 채로 울고 있는 자기 자신을, 어딘가 먼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처럼.
아팠구나.
매트가 젖고 있었어요.
많이, 오래.
감긴 눈 안쪽으로 오래된 것들이 흘러갔어요. 도서관에서 혼자 참고서를 넘기던 루체. B가 떠나간 뒤 따뜻함이 남아 있던 그릇만 바라보던 루체. '봉투 주세요'를 세 번 리허설하던 루체.
수고했어.
"천천히 일어나 주세요."
선생님의 목소리에 루체 씨는 상체를 들었습니다. 시야가 잠깐 흐릿했어요.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손등으로 재빨리 눈가를 닦았어요. 주위를 살폈습니다. 아무도 루체 씨를 보고 있지 않았어요. 다들 자기 매트 위에서 자기 몸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다.
하지만 매트 위에 동그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
누가 본다면 땀이라고 해야지.
수업이 끝났어요. 루체 씨는 매트를 말면서 그 자국을 손으로 문질러 닦았습니다. 흔적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만져보고 싶었어요. 자기가 울었다는 증거를.
선생님이 루체 씨 옆을 지나가다가 잠깐 멈추었어요.
"루체 씨, 오늘 수업 어떠셨어요?"
"...좋았어요."
루체 씨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그 이상은 묻지 않았어요.
"아기 자세에서 감정이 올라오는 분들이 꽤 있으세요."
그렇게만 말하고 지나갔습니다. 루체 씨는 조금 안심했어요. 요가 매트 위에서 웅크리기만 했을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많은 것이 올라오는 걸까요.
루체 씨는 항상 견뎌야 했고, 약해지면 안 됐어요. H가 했던 말이 진짜가 될 것 같았으니까요.
집에 돌아온 루체 씨는 방에 들어가서 매트를 깔았어요.
그리고 아기 자세를 다시 취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상체를 숙이고, 이마를 매트에 대고. 팔은 몸 옆으로 늘어뜨렸어요.
수업 때와는 달랐습니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어요. 매트의 고무 냄새가 코끝에 닿았고, 등이 숨을 쉴 때마다 부풀었다가 내려갔어요. 방 안은 조용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도, 다른 수강생들의 움직임도 없이, 루체 씨의 호흡만 방 안에 울렸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루체 씨는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한 번 더 해보았어요. 루체 씨가 루체 씨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완전히 믿어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 매트 위에서만큼은, 그 말이 조금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매트 위에서 5분쯤 있다가 루체 씨는 천천히 일어났어요. 책상 위에 핸드폰이 있었습니다. 어젯밤 스크랩해 둔 카페 공고가 아직 그대로 있었어요. '동네 카페, 바리스타 경험자 우대.' 지원하려면 이력서를 써야 했습니다.
2년 반의 빈칸.
전에는 그 빈칸이 무서웠어요. '이 사람은 2년 반 동안 아무것도 못 한 사람입니다.' 빈칸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오늘, 매트 위에서 울고 나니까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빈칸은 빈칸이에요. 그 안에 뭘 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루체 씨는 핸드폰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