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루체

요가를 시작한 지 한 달 반쯤 되었을 때였어요.


루체 씨의 몸은 확실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고양이 자세를 할 때 등에서 뚝뚝 소리가 나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예전만큼 무겁지 않았어요. 굳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체 씨에게 가장 깊이 남은 것은 몸의 변화가 아니었어요.


호흡이었습니다.




어느 수요일 수업이었어요. 그날 선생님은 동작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매트 위에 편하게 앉아서, 눈을 감고 숨만 쉬자고 했어요.


"오늘은 호흡만 해볼게요.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뱉어주세요."


루체 씨는 눈을 감았어요. 코로 들어오는 공기의 느낌과 폐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입으로 천천히 내뱉을 때는 입술이 차가워지고 부풀었던 폐가 다시 쪼그라들었어요.


"들이마시면서 하나, 둘, 셋, 넷. 내쉬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내쉬는 숨이 들이마시는 숨보다 조금 더 길었어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몇 번 반복하자 호흡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릿속이 조용해졌어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어요. 생각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통장 잔액, 어머니의 표정,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지나갔어요. 하지만 지나갈 뿐, 머물지 않았습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생각이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아.


루체 씨는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계속 쉬었어요.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루체 씨의 머릿속은 좀 나아지긴 했어요. 바닥을 뚫고 내려가던 기분이 바닥에서 멈추었고,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소음의 볼륨이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그게 약의 효과였어요.


하지만 호흡은 약과 달랐어요. 약이 머릿속의 소음을 줄여주는 거라면, 호흡은 소음의 전원을 잠시 끄는 것 같았습니다. 약은 루체 씨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작동했어요. 삼키기만 하면 됐습니다. 알갱이가 알아서 분해되어 몸속에서 일을 했어요. 하지만 호흡은 루체 씨가 직접 해야 했습니다.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고, 그 과정에 집중하는 모든 순간들을요.




그 경험은 루체 씨의 삶에 금세 스며들었습니다.


불안할 때 깊은 숨을 쉬어보았어요.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심호흡이 좋다는 말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머릿속의 시끄러운 것들이 실제로 잠시 조용해지는 걸 느낀 건 처음이었어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도 호흡을 해봤습니다. 천장의 작은 얼룩을 바라보면서, 넷을 세면서 코로, 여섯을 세면서 입으로. 그러면 어느새 아침이 찾아와 있었습니다.


방에 혼자 있을 때 가슴이 답답해지면 호흡을 했어요. 이불 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쉬었습니다. 몇 분이면 됐어요. 그냥 숨을 쉬는 것, 그뿐이었어요.


머릿속은 여전히 시끄러웠어요.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통장은 괜찮은지, 이대로 계속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것들은 약을 먹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등이 펴졌고, 숨이 깊어졌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어요.




병원에 가는 날에는 지하철을 탔습니다. 빈자리가 있었고, 루체 씨는 앉았습니다. 처음 이것을 탔을 때는 문 옆에 서서 손잡이만 잡고 있었어요. 그때는 앉으면 일어나기 싫어질 것 같아서 그랬지만 지금은 앉아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예닐곱 정거장이 예전보다 짧게 느껴졌어요.


"요가를 다니고 있어요."

"그래요? 좋은 변화네요. 몸은 좀 어때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좀 나아진 것 같아요. 계단도 전보다 안 힘들고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뭔가를 적었어요.


"운동이 도움이 될 거예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해보세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요가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같은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니까, 조금 더 진짜처럼 들렸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루체 씨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활 패턴에 대해서요.


월수금에 요가 수업. 2주에 한 번 병원. 매일 저녁 약 복용. 빈틈이 많은 패턴이었지만, 적어도 뼈대는 있었어요. 하지만 가장 튼튼한 뼈대가 빠져있었습니다.


뭔가 일을 해야겠지.


통장 잔액은 병원비와 요가 수업비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것은 루체 씨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장 정규직을 구할 형편은 아니었어요. 경력 공백이 2년 반이었고, 자격증도 없었고, 면접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까요.


아르바이트라도 알아볼까.


루체 씨는 밤에 핸드폰으로 구인 사이트를 열어보았어요. 편의점, 물류센터, 배달, 음식점 서빙.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무리인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동네 카페, 바리스타 경험자 우대. 오전~오후 파트타임 가능.'


대학교 때 카페에서 일했던 게 떠올랐어요. 물을 천천히 부으면서 커피가 내려지는 걸 바라보던 시간. 혼자서 조용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루체 씨는 그 공고를 스크랩해 두고 핸드폰을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오래도록 열어보지 않았던 옷장 구석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선배가 마지막 날 건네준 드리퍼 세트가 들어 있었어요.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는데, 버리지는 못한 것이었습니다.


드리퍼를 꺼내서 들여다보았어요. 가벼운 플라스틱 드리퍼. 선배가 "처음엔 이걸로 충분해"라며 건넨 것이었어요. 주말 오전,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선배가 옆에 서서 "천천히 부어, 급하면 맛이 탁해져"라고 했던 목소리가 떠올랐어요.


부엌으로 가져가서 물을 끓였어요. 원두도, 필터도 없었으니까 그냥 빈 드리퍼에 뜨거운 물만 통과시켜 보았습니다. 또르르, 하고 서버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부엌에 울렸어요.


의미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전자를 기울이는 손은 기억하고 있었어요. 가늘게, 천천히.


루체 씨는 약을 먹고 눈을 감았어요. 넷을 세면서 코로 들이마시고, 여섯을 세면서 입으로 내쉬었습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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