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본다. 알고보니 그들은 뼛속이 비어 있어 가볍다고 한다. 방광 또한 작아서 체내에 배설물을 오래 저장하지 않는다고.
날개 달린 동물이 모두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날 수 없는 신체 구조를 가진 새도 있지만, 먹을 것이 풍부하거나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는 비행 능력이 퇴화해 버린다.
필요한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가벼움부터 갖추고 싶어 평소에 쓰는 물건과 습관을 하나씩 줄여본다.
1. 콘택트렌즈 없는 하루
따뜻한 물에 세수하고 욕실 찬장을 더듬는데 이런... 렌즈팩 속에 잡히는 게 없다.
일회용 렌즈가 몇 개 남았는지도 세어보지 않고, 미리 구입해 놓는 것도 잊은 주간이었다. 가끔 세탁해 놓은 속옷이 부족해 속옷 없이 외출한 적은 있는데, 이참에 렌즈 없이 나가봐야겠네! 하며 출근했다.
두 눈이 시력차도 크거니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본다. 교정시력이 높은 오른쪽은 먼 곳을, 시력이 낮은 왼쪽은 가까운 대상을 또렷하게 본다. 몽환적인 눈으로 베이킹을 하면서 오븐 다이얼(아날로그 방식)의 눈금을 보려니 불편해 눈금 앞에 눈을 바짝 갖다 댄다. 다른 동작이나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력 훈련 전문가인 로버트 마이클 카플란 Dr. Robert Michael Kaplan 박사는 시각의 균형을 위해서는 더 잘 보이는 눈에 안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렌즈가 아니라 눈 스스로 보는 노력은 건강에 중요하다. 뇌신경의 약 49%가 눈과 연결되어 있고, 좌뇌와 우뇌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니까. 종종 왼쪽 눈이 렌즈 없이 스스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주어야겠다.
2. 일주일에 하루, 단식
최근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으로 서울에 다녀오는데, 요령 없이 급행지하철을 번번이 놓쳤더니 왕복 5시간 이상씩 걸리는 게 아닌가(경기도 평택에서)! 하루는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 계속 서 있다가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 내렸는데(역시나 요령 없이 집을 한참 지나쳐서) 갑자기 고관절이 크게 쑤시듯 아팠다. 오랜 시간을 서서 안 하던 짓을 하니 몸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걷기도 힘들어 남편에게 전화하며 생각했다.
'이참에... 단식을 하자.‘
동물은 아프면 굶는다. 먹는 행위를 멈추었을 때 몸이 치유와 회복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 사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도통 빠지지 않는 살 때문에 아픈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잘 됐다.
다음날 출근해서 점심을 먹자마자 단식을 시작했고, 24시간 금식을 어렵지 않게 마쳤다. 2년 이상 명상하고 6년 넘게 비건을 지향하며 음식에 대한 갈망이 줄었고, 아파서인지 더 입맛이 없었다. 늦은 오후에 비건 미역국과 일본식 채소무침인 아사즈케로 부드럽게 보식하고 집에 와서 체중을 재어보니 - 1kg, 아픈 것도 한결 나아졌다.
그다음 주에는 또 부비동염에 걸려서 한번 더 단식을 했다. 역시나 체중이 약간 빠졌고 아픈 증상도 다소 완화되었다! 앞으로도 주 1회 꾸준히 하고 싶은 기분이다. <1일 1식>이라는 책도 읽어볼까 생각 중.
3. 냉동실 비우기
큰 냉장고와 냉동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넣고 기한 내에 꺼내 먹을 자신이 없다. 결국 음식쓰레기가 될 뿐이라고 생각해서 최소한의 크기를 선호해 왔다. 그런데 요식업 매장을 하고 보니 저장공간이 늘 부족한 건 왜일까? 사진과 영상으로 늘 포화상태인 스마트폰처럼. 종종 집까지 재료나 남은 빵을 가져가서 넣어두는 일이 생긴다. 특히 빵은 음식처럼 주문 시 조리하는 게 아니라 미리 만들어두고 판매하다 보니, 팔리지 않으면 고스란히 남는다. 직접 만든 빵을 차마 버리지 못해 하나씩 쌓기 시작하면 금세 냉동실이 꽉 차버린다.
며칠 전 평소처럼 냉동실에 남은 빵을 넣으려고 열어보니, 매장 재료와 이전 빵들로 가득 차 무엇도 더 넣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뭔가 버려야겠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하면 익히지 않은 생선 및 해산물은 3개월, 익힌 생선은 1개월, 햄·베이컨·소시지·핫도그 등 가공식품은 2개월, 익히지 않은 고기는 1년, 익힌 고기는 3개월까지만 냉동 보관해야 한다. 아무리 냉동이라도 보관 기간을 넘기면 신선도와 품질이 떨어지므로.
무겁고 딱딱한 것들로 가득 찬 냉동실을 뒤지자니 손끝이 시리다 못해 얼얼하다. 하나하나 열어보면서 묵은 아이들을 발굴해 미련 없이 버리기로 한다. 버릴 것을 한데 모아놓고 여유로워진 냉동실을 보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답답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냉동실 정리를 해야 하나?
낯선 상황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 느끼며 관찰하는 일은 기존 프레임의 반대편에 서서 이쪽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게임 같기도 하다. 여행과 사랑이 그렇듯이.
사물을 평소와 다르게 보기 위해 반드시 불편해야 하진 않지만 변화는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불편한 변화에는 프레임 파괴와 동시에 의지력 강화라는 뜻밖의 보너스가 따라온다.